마니아(mania)

17세기 조선 선비 김득신은 무식(?)한 책읽기로 인구에 회자됐다. 그의 ‘독수기(讀數記)’를 보면 ‘백이전’을 11만3천번, ‘노자전’을 2만번, ‘제책’을 1만8천번, ‘장군묘갈명’을 1만3천번 하는 식으로 무려 36편의 고전을 1만번 이상 읽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장자’ ‘사기’ 등은 1만번을 채우지 못해 기록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박제가의 ‘백화보서(白花普序)’에는 꽃에 미쳐 1년 내내 꽃만 그렸다는 ‘화훼 마니아(mania)’ 김군의 이야기가 나온다. 표구에 미쳐 하루 종일 옛 그림 수선에 매달린 방효랑, 좋은 돌만 나오면 벼루를 깎은 정철조, 수석에 미쳐 돌을 주우러 돌아다닌 이유신, 담배를 너무 좋아해서 담배에 관한 기록을 주제별로 모은 ‘연경(煙經)’의 저자 이옥, 비둘기 사육에 열중해 ‘발합경’을 남긴 유득공, 앵무새 이야기를 집대성한 이서구도 있었다.이렇게 무언가에 빠지면 끝을 보는 열정을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한다. 즉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시 세상은 재주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 주류에 편입하지 못했던 경계인의 생애는 불행했다. 산수와 기하학에 재능을 보여 과거 시험없이 관상감에 발탁된 김영은 해시계 지평일구를 만드는 등 천재를 과시했지만 시기와 모략에 생을 마쳤다. 과거 시험 때마다 급제했던 노긍은 과거 시험장에서 글이나 팔아 먹으며 식객으로 전전하다 세상을 떴다. 허균은 새 세상을 꿈꾸다 능지처참을 당했고, “논어덕에 미치지 않았을 수 있었다”며 고전읽기를 생의 목표로 삼은 이덕무는 영양실조로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었다.

(돈을 꿔 달라는 말 대신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이. 여기 호리병을 보내니 가득 담아 보내줌이 어떠하실까?”라며 술병까지 딸려 보낸 박지원의 편지에 (이것 저것 다 좋은 것은 없다는 뜻의) “양주의 학은 없는 법”이라며 돈을 보내되 술병은 채우지 않은 친구 박제가의 답신도 있었다.

18세기 지식인들의 삶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21세기라는 오늘날이 인적·물적·심적으로 너무 삭막한 탓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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