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에 전사한 병사는 살아있는 평시의 장군 못지않게 소중하다. 전시의 절박한 사정을 평시에는 잊는다고 하지만 전시는 언제나 예고가 없다.
공전의 관객수 1천200만명을 돌파한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는 휴머니즘이 관객을 끌어들인 원동력이다. 살벌한 전쟁터를 통해 피어나는 휴머니즘은 이 또한 평시와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에 50년전 형이 전사한 곳에서 유골을 찾은 동생의 울부짖음이다. “형! 지금 뭣하고 있어! 꼭 돌아온다고 했잖아! 근데 이게 뭐야?!” 이미 백발이 성성한 동생은 전쟁터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생전에 사력을 다했던 형의 유골을 보며 이렇게 절규했다.
1953년 7월27일, 3년여의 처참한 6·25 한국전쟁이 휴전한지 반세기가 넘는 51년째다. 육군 36사단이 강원도 홍천군 내면 방내리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발굴작업 중 전사자 유골을 인식표와 함께 발견했다는 소식은 새로운 일깨움을 갖게 한다. 군번 1125518 이만초 상병, 그는 제9사단 공병부대 소속으로 1950년 12월28일 중공군과 격전을 벌인 홍천전투에서 전사한 것이다. 국방부는 그가 일병 때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애국자가 많다. 그러나 평시에 입으로 하는 애국은 진실이 의심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나라를 위해 바친 애국보다 진실이 더한 애국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런 호국영령의 희생이 있었음으로 하여 나라의 정체성을 지킬 수가 있었다. 그리고 번영을 이룬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영화를 누리는 이들이 많다. 잘먹고 잘사는 이런 지도자들 가운데 자신이 서있는 정체성을 왜곡하거나 부인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
멸공이나 반공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북측과 적대시 하자는 것도 아니다. 또 다시 처참한 전쟁을 치르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역사의 필연이다.
심히 걱정되는 것은 소련과 동구권에서 이미 실패로 끝난지 오래인 해묵은 이데올로기를 들고나와 신장개업하는 이념론자들이다. 이 나라를 피땀 흘려 지키고 일군 정체성마저 경멸시하는 이들의 종국적 목표는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시류는 시대의 흐름이 있어도 나라의 정체성은 다름이 있을 수 없다. 국방부의 한국전쟁 전사자 발굴사업은 우리의 고귀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불변의 노력이라고 보아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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