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큰 道理를 잘 분간하라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노(魯)나라 사상가 묵자(墨子·BC 480~390)의 주장 중 ‘상현(尙賢)’론이 있다. “어진 사람을 존경하라” 또는 “인재를 존중하라”는 상현론은 단순히 능력주의를 주장한 게 아니다. 능력이 없으면서도 정치의 중추에 앉아 있는 인간을 추방하고, 진정 능력있는 사람에게 내어주라는 매우 도전적인 주장이다. 전국시대 초기에는 각국의 정치가 거의 세습 귀족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낮은 신분의 출신자에게는 문이 닫힌 정황이었다.

“귀족이 언제까지나 귀족이어서도 안되며, 백성이 언제까지나 비천해야 한다는 까닭도 없다. 위에 있는 자가 언제까지나 위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정치를 무능한 귀족의 손에서 해방시켜라.”

이렇게 묵자는 과격한 주장을 폈다. 더 나아가서 ‘군주들이 입으로는 능력있는 인물을 등용하겠다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상황’을 비판했다.

“작은 도리(道理)는 분간하지만 큰 도리는 분간하지 못한다”는 질타도 서슴지 않았다. 예컨대 위정자는 가축을 요리할 때,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고 반드시 솜씨 좋은 요리사를 고용한다. 의복을 지을 때도 솜씨좋은 재봉사를 고용해서 만들게 한다. 즉 가축을 잡거나 의복을 지을 때 위정자는 능력없는 자를 결코 쓰지 않는다. 아까운 재료만 망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위정자는 능력있는 인물을 기용하는 자세를 잊지 않고 있다.

또 위정자는 말이 병 들면 반드시 명의에게 보여 치료시키고, 활줄이 끊어지면 반드시 솜씨 있는 궁사를 시켜 다시 갈아 끼게 한다. 결코 능력 없는 자를 쓰지 않는다. 아까운 재산이 쓸모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를 다스리는 단계에 이르면 사정은 일변한다. 능력보다는 논공행상을, 연고관계를 중시하여 등용한다. 묵자는 전국시대의 각국을 역방하여 군주들에게 ‘상현’론을 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그의 주장에 선뜻 찬성할 리가 없었다.

“양궁(良弓)은 당기기 어렵다” 역시 인재 등용의 주장에 근거를 둔 묵자의 말이다. 강한 활은 당기기 어렵다. 그러나 강한 활이라야 화살이 멀리까지 날아가 과녁에 깊이 꽂힌다.

명마(名馬)는 처음에는 타기가 어렵다. 그러나 좋은 말이라야 주인의 의중을 알고 순종하고 인내한다. 명장(名將)이 명마를 다룬다. 좋은 말 일수록 무거운 짐을 실어도 지치지 않고 멀리까지 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수한 인재는 다루기가 어렵다. 그러나 우수한 인재라야 군주를 인도하여 그의 위대함을 세상에 떨칠 수 있게 만든다.

능력보다는 연고나 정실이 통하는 사회를 묵자는 통분해 하였다. 연고와 정실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발전을 저해한다. 가신(家臣)이 아니다 하더라도, 사고가 좀 다르다 하더라도 군주는 능력있는 사람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정치가 발전한다. 국가가 부강해 진다.

기원 전 5세기에 정치개혁을 주장했던 묵자의 비판에 귀 아파했던 부류들이 오늘날 한국에 너무 많다. 국민을 위해서 그런 부류들은 정치권에서 사라져야 한다. 능력도 없이 권력의 중추에 앉아 있는 위인들이 더 이상 호가호위(狐假虎威)토록 해서는 대사를 망친다.

탄핵을 면한 노무현 대통령은 묵자의 ‘상현’론을 명심해야 한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기각이 발표된 직후 전 세계 언론과 정부·전문가들은 “더 센 권력을 갖고 돌아왔다”고 논평했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젠 정신차려야 한다. 여대야소라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다행히 기각은 됐지만 대통령도 탄핵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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