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은 의정부와 육조 등 조정에서 논하는 대소 정치사에 초연했다. 이를 테면 측근정치의 배제였다. 승정원엔 도승지를 최고 책임자로 하여 좌승지와 우승지가 있었고 좌부승지·우부승지 밑에 동(同)부승지를 두었다. 조정의 대소 신료들은 왕과의 독대가 금기시된 게 원칙이었으나 승정원 승지들은 왕명을 지근에서 받들면서도 다만 임금의 그림자일 뿐 소리 소문없이 숨을 죽였다. 왕을 빙자한 호가호위의 권좌로 비칠 수 있음을 스스로가 애써 근신한 것이다.
문재인 ‘왕수석’이 청와대 비서실에 복귀하였다고 야단 들이다. 비서실 직제가 개편됐다는 뉴스가 또 요란하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실은 어디까지나 비서실일 뿐이다. 대통령 측근인 누가 무슨 자리로 비서실에 들어왔건 말건 민중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비서실 구조가 2실·6수석·5보좌관·48개 비서관인 가운데 그중엔 ‘리더십 비서관’이란 직함이 생긴것 같다.
일반 부처는 기구 하나 바꾸려면 이리 저리 걸리는게 많아 협의 절차가 꽤나 복잡하다. 비서실 기구 개편을 떡 주무르듯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청와대이기 때문인 지는 몰라도 민중은 이 역시 별관심이 없다. 다만 의문스런 것은 항상 비서설 규모를 줄인다면서도 어떻게 된 건지 줄인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21세기 첨단시대의 대통령 비시설을 케케묵은 왕조시대의 승정원과는 비할바가 못된다. 비서실 기구를 어떻게 두든 크게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분명한 사실은 있다. 국정의 중심은 비서실(승정원)이 아니고 내각(조정)이다. 이것이 바로 선 나라의 면모다.
자고로 환관(황제의 내시비서)의 목소리가 커서 잘 된 나라는 없다. 측근정치, 비서국정의 폐악은 지금도 경계의 대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년차 국정운영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국정의 무게를 내각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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