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의 도덕적해이 너무 심하다

금융기관처럼 정확하고 계산적인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더구나 금융기관간의 온라인망이 구축된 후 처리하는 대고객 업무는 한 치의 빈틈이 없다. 특히 대출금 회수의 경우, 하루라도 연체하면 즉시 통보하는 신속성과 치밀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기관 내부에서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은 대단한 모순이다. 금융기관 임직원들이 저지르는 금융범죄는 무엇보다 도덕적해이(모럴 해저드)가 극심하다는 점에서 책임이 크다. 고객들의 도덕적해이를 그토록 문제삼고 있는 금융기관에서 속출하는 금융범죄는 특히 고객전체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에서 사회적인 비난을 면키 어렵다.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금융사고만 해도 496건이다. 2002년의 383건에 비해 29.5%나 증가했다. 지난 해 사고 내용을 보면, 이런 곳이 과연 금융기관인가 하는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임직원이 주도한 횡령·유용사고가 320건으로 무려 64.5%나 됐다. 외부인에 의한 사기대출 50건, 도난 14건도 마찬가지다.

금융기관별로는 은행이 191건으로 가장 많았다. 보험이 131건, 증권이 23건이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초 W카드 직원이 회삿돈 400억원을 횡령한 데 이어 이달에는 D생명 직원 3명이 공금 20억원을 횡령한 뒤 해외로 도주했다. T상호저축은행 직원도 고객명의로 33억원을 대출 받았다. 이런 추세로 볼 때 사고 건수나 금액이 작년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범죄는 개인적 주식투자에 실패하거나 빚에 쫓기어 한 건으로 만회하기 위해 주로 발생한다. 또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없어지면서 애사심이 낮아진 것도 원인이라고 하지만 당치 않다. 우리 사회에 평생 직장이 어디에 있는가. 카드빚 없는 사람도 극소수다.

금융사고는 물론 도덕적 해이 탓이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도 사고원인 중 하나다. W카드 횡령사고의 경우 범죄가 4개월동안 계속됐지만 여러 곳의 부서에서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금융기관은 신용불량자들이나 대출금 연체자 등 고객의 도덕성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자체부터 도덕성을 회복하고 근무기강을 확립하기 바란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