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만 있고 책음은 없다

1997년 김영삼 정권 말 외환위기의 실상을 축소 보고해 환란을 초래한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지었다. 1998년 검찰의 기소로 시작된 IMF사태 법정공방은 결국 이렇게 끝났다. 정책 실패가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이 본 무죄 이유다.

하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난번 탄핵소추 중 경제정책 실정 역시 소추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헌법재판소는 이 부분은 각하한 바가 있다. 환란이 가져온 것이 공적자금 투입이다. 외환위기로 기업의 연쇄부도가 급증, 금융권이 부실채권 누적으로 위기에 처한 경영난을 정상화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164조원이 투입됐다.

문제는 공적자금 회수다. 최근 감사원 감사에 의하면 회수된 건 전체 투입액의 40.4%인 66조4천억원에 불과하다. 미회수 금액 중 69조원은 회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니까 떼인 공적자금이 돌려받는 공적자금보다 더 많은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공적자금의 관리책임을 맡은 정부 투자기관과 자금을 지원받은 금융기관 등의 도덕적 해이다. 방만한 자금 운용으로 무려 1조760억원의 공적자금이 낭비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회수가 불가능한 69조원 중 49조원은 25년간에 걸쳐 재정자금으로 대납하고 20조원은 금융기관이 역시 나눠 부담하기로 했다. 정부가 대납하는 49조원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사법적으로 묻기로 하면 공직자가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웬지 허망하단 생각도 없지 않다. 환란으로 고통받고, 공적자금은 떼이고, 흥청망청 낭비한 돈까지 국민이 또 부담해야 할 판이니 참으로 황당하다. 이런 데도 일을 저지르고 공적자금을 주무른 사람들은 거의 다 물러가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조차 없다. ‘미안하게 됐다’는 말 한마디 들을 길이 없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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