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자기 나라 왕을 ‘덴노헤이카’(天皇陛下·천황폐하)라고 한다. 그냥 황제도 아니고 하늘의 황제, 또는 하늘이 내린 황제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른다. 그러한 최경칭의 지칭으로 자국의 긍지를 드높이고자 하는 것이 일본인 기질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기 전에는 현신(現神), 즉 살아있는 신이라고도 했다. 신이 아니라며 ‘인간선언’을 한 것은 종전이 된 이듬해다.
그래도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 왕을 지금도 지극히 숭배한다. 왕실의 일거일동은 중대 뉴스다. 지난해 마사코 태자비가 황궁병원으로 해산하러 가는 길을 NHK 방송은 줄곧 현장 중계했다. 여기엔 아들 낳길 바라는 일본인의 국민적 염원이 담겼던 게 딸을 낳았다. 일본 왕실은 지금 나루히토 태자를 계승할 세손이 없어 걱정이 태산같다. 나루히토 태자는 딸만 1명이고, 태자의 동생 그러니까 현 아키히토왕의 둘째 아들인 후미히토는 딸만 2명이다.
아키히토 왕은 올해 70세다. 태자는 44세다. 세손이 다급한 형편이다. 문제는 마사코 태자비 또한 40대가 되어 앞으로의 임신이 불확실한 데 있다. 일본의 황실전범은 왕(천황)의 자격을 ‘황실 태생의 남성’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만약 앞으로도 ‘황실 태생의 남성’이 나오지 않으면 나루히토 태자를 계승할 후계자가 끊길 실정이다. 이래서 얼마전에는 참의원(상원) 헌법조사회 공청회에서 황실규범을 고쳐 여성도 왕위 계승권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전통의 고수를 주장하는 보수층 반발에 묻혀 공론화 되지 못하고 말았다. 이래저래 나루히토 태자부부, 특히 마사코 태자비는 왕실 안팎에서 아들 낳길 바라는 무언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왕실이 세손 후계자를 보게될 것인지, 아니면 부득이 여왕을 받들게 될 것인지 앞으로의 일이지만 두고 볼만 하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