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천도왕조설’ 이해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을 두고 천도가 아니라는 말은 전에도 했다. 그냥 해보는 말로 알고 넘어갔다. 그런데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가진 청와대 만찬에서 똑같은 말을 또 했다. 헌법기관 11개, 독립기관 2개, 대통령 직속기관 11개, 국무총리 직속기관 13개, 중앙부처 및 소속기관 48개 등 청와대·국회·대법원을 비롯한 3부 요로기관 85개 국가기관을 신행정수도로 옮길 예정인 게 정부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수도를 옮기는 것이다. 수도가 뭣인가, 한 나라의 행정수반이 집무하는 중앙정부가 있는 곳이 수도다. 이 개념에 의하면 신행정수도란 것 만으로도 수도의 이전이다. 한데, 노 대통령은 자꾸 아니라고 강변한다. 중앙정부만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입법부·사법부까지 옮길 요량이면서 그렇게 말한다. 심지어 “천도는 왕조시대 얘기”라고 우긴다. 천도가 뭔가, 수도를 옮기는 것이 천도다. 그럼, 왕조시대에 수도를 옮기는 것은 천도고 이 시대에 수도를 옮기는 것은 뭐라 해야 하는 가를 묻는다. 이 정부가 행정수도를 추진하는 말 그대로 신행정수도 이전이라고 한다면 그거나 천도나 다를 바가 없는 그 말이 그 말이다.

대통령은 수도권 재정비, 국토의 재정비 개념을 강조하면서 신행정수도 이전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우리는 대통령의 생각과는 달리 하지만 이미 수차에 걸쳐 그같은 내용에 관해 언급한 바가 있어 여기선 더 말 않겠다. 문제는 천도가 분명한 실체적 진실을 두고 왜 엉뚱한 왕조를 빗대가며 천도란 말을 굳이 부인하는 연유가 뭣이냐에 있다. 짐작컨대 만약에 관련 특별법의 명칭이 ‘신행정수도’로 돼 있어 이 때문에 천도 표현의 부인을 고집하는 것이라면, 대통령 자신이 이 정부가 구상하는 천도 수준의 3부 요로 이전이 법테두리 일탈임을 시인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는 청와대와 중앙부처만 옮기는 신행정수도 건설 자체만도 반대하지만 대통령 말대로 법이 제정돼 있고 또 정 옮기겠다면 법대로 청와대와 행정부만 가지고 거론하기 바란다. 국회와 대법원은 대통령이 옮기라 마라 하고 간섭할 대상이 못된다. 그렇다고 국회나 대법원의 의사를 묻는 절차를 밟았다는 소식도 들은 적이 없다. 행정수도를 옮긴다면서 행정부가 아닌 국가기관까지 옮기려는 법률적 근거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다. 우리는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앞으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우리는 일이 이토록 대통령에게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우리 역시 심히 유감스럽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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