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차를 운전했던 사람 중에 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군대있을 때부터 집안 식구처럼 데리고 있던 위관 출신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윤씨는 육영수 여사의 신뢰가 매우 두터웠다.
어느 날 윤씨는 육여사에게 “여사님, 저도 이젠 사회(청와대 밖)에 나가고 싶습니다”하고 간청을 했다. 윤씨는 한국전력의 전차운전사업소장이 됐다. 운전에 관한 업무가 관계되니까, 전차운전사업소가 업무의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래도 특혜인사였다.
어쨌든 윤씨는 한국전력 수뇌부로서는 신경 쓰지 않으면 안될 인물이었다. 영업소장으로는 좀 미흡하다 싶어 다시 부산지점장으로 발령을 냈다. ‘알아서’ 직급을 올려준 것이었다.
일약 한전부산지점장이 됐지만, 경찰서장도 중앙정보부 분실장(현 국정원 지부장)도 윤씨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방유지 서열로 치면 저 뒷줄이었다. 중앙집권제이긴 하지만 지방의 분권화된 권력은 한 마디로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강아지처럼 설친다. 그 시절엔 더욱 그랬다. 서열이야 있지만 대체적으로 몇 사람의 유지가 지방의 대소사를 협의, 결정했다.
당시로는 도지사, 중앙정보부 분실장, 검찰 지검장과 고검장, 지방 국세청장, 경찰국장, 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소위 ‘유지 클럽’이었다. 그 밑에 은행지점장이 줄을 이었다. 권력, 금력 없는 우체국장은 명함도 못 내밀었다. 주석에서 술잔이 잘 오지 않으면 “내가 우체국장인가”라는 농담이 빈말 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우체국장도 ‘돈을 만지는’ 기관장이어서 힘이 생겼지만 사실 우체국장에게 아쉬운 말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청와대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한 사람 건너고 두 사람 건너면 청와대와 줄 안 닿는 사람 없는 곳이 지방유지클럽이다. 사람들은 처음엔 윤 지점장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박 대통령이 부산에 내려 왔다. 박 대통령은 환영 나온 유지단 앞에서 “○○이는 잘 있는가?”라고 새카만 한전 지점장의 안부를 물었다.
모두들 어리둥절 하고 있을 때 윤씨가 저쪽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음은 물론이었다. 거기다가 윤씨는 박 대통령이 부산에 머무는 동안 왕년의 실력을 살려 대통령 차의 핸들을 잡았다. 윤씨의 명성은 부산 바닥에 확 퍼졌다.
그 후로도 박 대통령은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그를 찾았고 윤씨는 자연 ‘유지클럽’의 중요한 멤버가 되었다.
우리 나라 야쿠르트 업계의 대 메이커인 모 야쿠르트 사장은 그의 형벌되는 사람이었다. 이 기업을 실질적으로 키운 오너 본인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 성장 배경에는 알게 모르게 박 대통령과 동생의 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 때 그 시절엔 그랬다.
이 얘기는 관대하게 봐주면 인정미담급이라 할 수 있을 지 모른다. 문제는 권력자와의 관계에 따라 국사의 매우 중요한 자리나 공기업의 장(長)자리가 메워지고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권력자의 배후 지원에 따라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윤씨의 경우는 주인 밑에서 오래 고생한 ‘일꾼’에게 밭떼기 하나 떼어주는 정도라고 볼 수 있지만, 더 큰 자리들이 권력의 패거리라든가 그 울타리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심각한 문제다. 우선 전문성이 없으니 조직의 생산성이 저하될 수 밖에 없고, 보다 유능한 인재들이 발탁되는 기회를 빼앗아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차관이 장관으로 승차해야 되는데 별로 전문가도 아닌데 대통령과 친하다고 정치인 등이 하루 아침에 장관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잘 못 돼도 크게 잘못된 경우다.
우리는 그동안 새 정권이 들어설 때, 또는 정권이 끝나갈 무렵 그랬던 일을 숱하게 봐 왔다. 지금도 정부나 지자체를 막론하고 공기업 사장 자리를 비롯. 산하 기관이나 관련단체를 노리며 고공투하 차례를 기다리는 ‘낙하산’이 권력주변에 있는 게 여실이 보인다.
통일부장관, 복지부장관, 문회관광부장관 등 일부 개각을 앞두고 명령권자의 눈치를 살피는 낙하산병들이 실로 처량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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