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년 전만 해도 수의사(獸醫師)는 소·말·돼지 등의 질병을 진찰·치료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수의사들이 큰 동물 진찰을 기피하는 현상이 짙어졌다.
올해 1월 현재 수의사 9천31명 중 3천18명이 동물병원 등 임상에 종사하고 있는데 소·돼지 등 큰 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는 447명, 애완견 등 작은 동물을 보살피는 수의사는 1천686명으로 거의 4배에 이른다. 전국의 동물병원도 큰 동물은 2002년 443 곳에서 2003년 424 곳으로 줄었지만, 작은 동물은 1천380 곳에서 1천460 곳으로 크게 증가했다. 원인은 젊은 수의사들이 소, 돼지 등을 다루는 힘든 일을 싫어하는데다 애완동물의 진료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또 수의학과가 6년제로 바뀌면서 최근 2~3년간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고 수의과에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또 다른 원인은 농촌사회가 수의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점이다. 농촌의 일부 지역 외에는 동물병원을 개원해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없고 특히 자녀교육환경 등 생활여건이 뒤떨어지는 현실이 수의사들로 하여금 농촌을 멀리 하게 한다.
전국의 지역축협에서 가축의 질병 치료 및 예방을 위해 동물병원 운영을 계획하고 있지만 수의사를 못 구해 개원을 못하고 있는 곳이 상당수다. 질병 등 몸에 이상이 생긴 가축을 제 때 치료하지 못하면 농가의 경제적 손실이 더욱 커지지만 수의사들이 농촌을 외면하는 바람에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군 복무를 대신하는 공익수의관 제도 도입이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가 병들어 거리에서 쓰러져 있는 애완견을 안고 들어가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애완동물을 병들었다고 내다 버리는 사람과 그 애완견을 치료해 주려고 자신의 동물병원으로 안고 들어가는 수의사와는 인격면에서 천양지차다. 그런 동물 사랑 정신으로 농촌지역에도 수의사들이 관심을 가져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완동물의 버려진 목숨을 살리려는 수의사의 뒷모습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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