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의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1924~1963·조선이름 김신락·일본이름 리키도잔)은 패전 직후 일본인들의 무너진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면서 일약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생전에 그는 ‘만인지상 일인지하(萬人之上 一人之下), 천황 아래 역도산’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주소 없이 ‘일본 역도산’이라고만 써도 편지가 배달됐을 정도의 스타였다. 조선에서 태어나 39세에 일본 신주쿠에서 야쿠자의 칼을 맞고 사망한 후에도 지금까지 400여권의 관련서적이 나올 정도로 신화적인 존재다. 역도산의 2남2녀도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사후에야 알았고 일본인의 절반은 지금도 역도산을 일본인으로 알고 있다.
1960년대 한국에 프로레슬링 붐을 일으킨 역도산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한일합작 영화 ‘역도산’이 지금 일본에서 촬영중인데 설경구가 역도산역을 맡았다. 설경구는 ‘역도산’의 타이틀롤을 맡은 후 살인적인 몸불리기와 고난도 레슬링 훈련, 완벽한 일본어 구사에 혼신을 다했다.
73㎏이던 몸무게를 94㎏으로 불렸다. WWE 최상위 랭킹의 프로레슬링과 직접 맞붙는 시합장면에서 설경구는 196㎝ 146㎏의 거구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괴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대사도 영화전체를 통틀어 두 장면을 빼놓고는 전부 일본어다. 촬영 초기 일본 성우의 더빙이라는 특단의 대안도 제시됐지만 설경구는 일본어 대사를 외우는 대신 일본어를 배웠다. 지난 8개월동안 하루 4시간의 강훈을 거친 그의 일본어 실력은 현지 배우, 스태프와 자유자재로 대화하는 수준이다.
영화 ‘역도산’은 민족주의적 관점이나 도덕적인 잣대가 아니라 휴머니즘의 시각으로 재조명된다.
몸뚱이 하나로 고달픈 시대를 관통한 한 거인의 치열한 삶이 스크린에서 역동한다.
설경구는 영화 ‘박하사탕’ ‘오아시스’ ‘실미도’에서 이미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체중을 21㎏이나 불린 배우 설경구의 프로 근성이 놀랍다.
‘역도산’은 역도산 사망 41주기인 오는 12월15일 개봉될 예정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