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국회 막판에 통과됐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친일보호법’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조사 대상과 권한에 온갖 단서와 규제조항이 붙어 친일행위 규명 자체를 사실상 어렵게 하는 조문들로 가득찼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14일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한나라당 일부 의원, 무소속 일부 의원 등 172명이 국회에 제출한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16대 국회 때 만들었던 기존법을 개정한 것이다. 군 계급을 중좌 이상으로 했던 것을 소위 이상으로 고쳤고, 친일행위의 범위중 ‘전국·중앙’ 단위로 했던 단서 조항도 없앴다. 창씨개명에 앞장선 사람과 언론을 통한 일제전쟁 협력자도 대상에 포함했다.
이 특별법안이 제출되자 한나라당과 일부에서 입법 후 (9월)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하는 것은 박근혜 의원과 보수언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야당탄압,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故 박정희 대통령이 1942년 만주 신경군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다가키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일본 육사에 편입해 1944년 졸업했으며, 일제 패망 직전 만주군 중위로 복무한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조선일보> 와 <동아일보> 가 중-일 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 1면 머릿기사와 사설, 사고 등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를 칭송한 것 역시 당시 신문을 통해 오래 전 드러났다. 조선일보는 그해 7월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을 ‘아군’ 또는 ‘황군’으로 표기하기 시작했으며, 8월12일에는 조선 동포들에게 국방헌금과 군대위문금을 내도록 독려하는 사고를 냈다. 1938년 6월15일에는 육군지원병훈련소 개소를 맞아 사설과 1면 머릿기사로 “조선통치사의 한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라며 “황국에 대하여 갈충진성(竭忠盡誠)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도 중-일전쟁이 시작된 뒤 일제가 명절로 꼽았던 명치절에 대해서 “명치 천황의 어성덕을 흠앙하는 명치절! 아침부터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까지도 이날을 축복하는 것 같았다”(1937년 11월4일자)고 찬양했다. 1938년 4월3일엔 침략전쟁을 위한 육군특별지원병제에 대해 사설에서 “조선민중도 이 제도가 실시되는 제1일부터 당국의 지도에 순응하여서 그에 협력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故 박정희 대통령과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일제시절 과거지사는 이렇게 명백하다. 그런데도 친일 진상규명 특별법을 놓고 갑론을박 하고 있는 것은 보기에 딱하다. 한나라당은 “어두운 역사를 털어내고 민족정기를 세우는 노력에는 동참하겠지만 법 상식을 깨고 마녀 사냥 식으로 벌이는 행태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열린우리당은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민족적 염원이 담긴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박근혜 (한나라당)전 대표가 친일진상 특별법 개정안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반대한 것이야말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조선·동아일보는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로부터 한층 가혹한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다. 이 시기의 일부 기사만을 대상으로 조선·동아일보를 공격하려는 시도”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두 신문사가 당시 불가항력적인 상황하에 따른 피해자며 희생자라는 얘기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부모도 옛날에 창씨개명을 했다고 대통령 자신이 밝혔다.
앞으로 조사범위가 확대되어 친일행위들이 만천하에 밝혀진다 해도 예컨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독재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는 여전할 것이다. 일순의 친일성 보도는 있었지만 막강한 조선·동아일보에 변동이 있을 리 없다. 시인 서정주와 난파 홍영후의 친일행적이 드러났지만 미당의 문학, 난파의 음악이 외면 당하지는 않았다.
선인들의 친일행적이 나타난다면 대신 용서를 구하는 게 오히려 후련할 수도 있다. 가리고 숨긴다고 치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신행정수도 이전, 민생고 해결 등 할 일이 산적해 있는 마당에 왜 하필 지금 국론을 분열시키느냐는 주장도 있지만 친일청산은 어느 때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어두운 과거를 털어버리는 것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역사(役事)다. 새출발은 빠를수록 좋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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