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기가 바쁘게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 대표가 화답하고 나섰다. 천 대표의 화답이 중대선거구제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 그리고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련 법안의 개정 등 비교적 폭넓은 것을 보면 이미 시나리오가 짜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행 선거법 등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고친다는 것이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유다. 그러나 원래 아무리 고쳐도 단점이 없을 수 없는 것이 법이다. 지난 16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에 의한 개혁 입법으로 만든 현행 선거법 등을 또 고친다면 선거 때마다 고치는 1회용 법으로 전락하게 된다.
특히 여당이 제시한 지구당 폐지 보완책, 후원금 한도 현실화 등은 돈 쓰는 정치로 회귀한다고 보아 그 저변이 의심스럽다. 폐지된 지구당 대신에 ‘지역위원회’혹은 ‘관리위원회’를 둔다는 것이 지구당 폐지에 따른 보완책이라지만 명칭만 다를 뿐 그거나 이것이나 내용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후원금 한도액도 현행 1인당 연간 1억5천만원의 상한선을 현실화하자고 하면 도대체 얼마가 현실화 한도액이며 근거는 무엇인지 그 배경을 알 수 없다. 돈 안쓰는 정치를 정치개혁의 으뜸으로 강조해온 열린우리당이 난데없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 연유를 도시 모르겠다.
선거구 개편 역시 문제가 없지 않다. 도시지역은 중대선거구제를,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로 도·농복합선거구제 도입을 구상하는 모양이나 도·농의 한계가 분명치 않은 지역이 많다. 농촌 역시 도시화 발달로 도시같은 농촌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난점이 아니고도 두 선거구제 병행은 정책의 모순이다.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중대선거구제로 간다면서 지역구도의 요인이 되는 소선거구제를 병행하는 것은 스스로가 명분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현행법 시행 넉달만에 개정을 들먹이는 것은 시기가 아니다. 민생에 주력해야 할 여권이 선거법 등을 개정하자며 엉뚱한데 신경을 쓰는 것은 아주 부적절하다. 선거법 등 정치관련법 개정은 여야 합의가 필수다. 만약 정치권이 이를 위해 머리를 맞대어 이해 다툼으로 세월을 보낸다면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은 4년 뒤의 선거법을 말할 정도로 한가롭지가 않다. 열린우리당은 선거법 등 개정 추진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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