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죽음 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는 하면서도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한 말이다. 무엇이든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특히 아무도 그 세계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는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신병 들어 누우면 과거지사라도 생각나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그야말로 마지막이다. 가족에게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교통사고 등이 아니더라도 갑자기 쓰러져 최후를 맞을 수도 있고, 중풍이나 치매가 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채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 자녀에게 부모 마음을 전할 수 없다면 실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자식들 또한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그래서인지 요즘 삶의 마지막 단계인 ‘유서 쓰기’가 유행(?)하고 있다.
성남시 분당에 사는 67세의 K여사는 유서를 미리 썼다. 병이 들어 움직이지 못하면 간병인을 쓰도록 하고, 치매에 걸렸을 때는 요양원에 보내 달라고 했다. 또 죽었을 때는 머리엔 조바위를 씌우고 수 놓은 가죽꽃신을 신겨달라고 당부했다. 애도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에게는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부탁도 남겼다.
세상을 떠나는 날 자신을 배웅하기 위해 온 친지들에게 들려줄 CD에는 “와 줘서 고맙다. 그동안 혹시 서운한 게 있으면 용서하고 잊어달라”고 부탁하고 ‘사의 찬미’를 라이브로 담았다.
유서가 법적으로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선 반드시 자필로 쓴 뒤 주소와 이름을 적고 인장을 찍어야 한다. 컴퓨터·타자기 등으로 작성했거나 대필한 유서는 법률사무소 등에서 공증을 거쳐야 한다. 또 녹음을 했을 때는 2명의 증인이 필요하다.
수원문인협회(회장 김현탁)가 2004년版 ‘수원문학’지에 회원들의 ‘미리 쓰는 유서’를 특집으로 꾸민다고 한다. 미리 유서를 써 두면 이제껏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한편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깊이 있게 할 것으로 짐작된다. “내가 죽으면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나 하지 말아 달라”는 어느 시인의 유시(遺詩)가 생각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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