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법률 개정은 기본적으로 입법기관인 국회와 집행기관인 정부 부처의 의무다. 한데, 헌법재판소가 위헌 등 판결을 내렸는데도 관련 법규가 개정되지 않았다면 이는 국회와 정부의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문제는 이들 기관의 ‘직무유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법제처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성호(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 위헌 결정 법률 정비현황’을 보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지난 7월 15일 현재 헌법재판소의 위헌,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뒤에도 국회에서 개정되지 않아 관련 법조항이 과거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법률이 무려 26건이나 된다. ‘헌법재판소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예컨대 헌법재판소가 지난 1992년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등을 위반한 피의자에 대한 구속기간을 현행 형법보다 20일 더 긴 50일로 규정한 법 조항(제19조 중 제7·10조)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해당 법조항은 무려 12년 동안이나 개정되지 않았다. 또 올해 내려진 9개의 위헌, 헌법불합치 판결에 대해서도 개정 발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등 판결을 내려도 관련 법규가 개정되지 않으면 ‘법적 안정성’이 저해 받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잘못된 법 조문이 명문화돼 있는 것은 국민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위헌 판결이 내려진 해당 법률 조항은 효력이 정지되지만, 법 조문은 그대로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당 법 조항이 개정되지 않으면 이에 따른 각종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정비되지 않으므로 법적 혼란은 일반적 인식보다 훨씬 커 사회적 폐해를 유발한다.
이 같은 문제는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국회의원과 정부 스스로 개정 입법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탓으로밖에 볼 수 없다. 정쟁과 당리당략이 아무리 급박하다고 해도 국회가 입법기관 고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치 못하면 이야말로 지탄의 대상이다.
위헌 법률에 대한 개정안이 바로 마련되지 않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불복하거나 동의치 않는다는 의혹을 살 수가 있다. 후속 조치를 확인치 않은 헌재의 책임도 없다 할 수 없다.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해당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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