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칼럼/유스웨이브 국제 청소년학교

‘유스웨이브(youth wave) 헌장’은 이렇다. “1.유스웨이브는 청소년이 주체가 된 청소년 자원봉사의 새 물결운동을 선도한다. 2.유스웨이브는 청소년 자원봉사의 전문화를 지향한다. 3.유스웨이브는 청소년 자원봉사를 바람직한 청소년 문화로 실천한다. 4.유스웨이브는 청소년 자원봉사를 통해 지역사회의 공동체 건설을 위해 헌신한다. 5.유스웨이브는 성별, 연령, 신분, 국경을 넘는 청소년 자원봉사를 통해 세계의 차별상을 극복하는 인도주의적 이념을 실현한다.” 구구절절 희망을 주는 헌장이다.

이 헌장은 2001년 6월2일 창립한 ‘유스웨이브’가 제정했다. 창단식에는 600여명의 청소년(중·고등학생) 단원들과 54명의 전문자원봉사자들이 참석했다. ‘군포’라는 대한민국의 작은 도시에서 발원한 청소년 자원봉사의 물결이 바야흐로 한반도를 적시며 인류의 가슴 속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유스웨이브’가 창립된 2001년은 21세기의 원년이다. 유엔은 2001년을 ‘세계 자원봉사의 해’로 정했었다. 이는 자원봉사 활동을 통한 인류의 인간성 회복만이 평화와 번영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유엔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유스웨이브’ 역시 유엔의 메시지가 담겼다.

‘유스웨이브’ 안에는 12개의 그룹이 있다. 유스캠페인·유스케어·유스컴퓨터·유스북·유스뉴스·유스데코·유스엔터·유스그린·유스핸디·유스119·유스텔러·유스주니어다. 명실공히 ‘유스웨이브 헌장’을 선양할 수 있는 기반이며 몸체다. 또 그동안 헌신적으로 실천해 왔다.

최근 ‘푸르덴셜 생명’이 주관한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대회’ 심사 석상에서였다.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한 동아리 대표에게 “봉사활동을 하는 데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한 마디로 ‘돈’이라고 대답했다. 돈이 필요하지만 아르바이트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어 부모님께 돈을 탄다고 하였다. 어렵게 살고 있는 이웃을 돕는 데 봉사(노동)만 갖고 안되더라면서 괜히 머리를 긁적거렸다.

봉사하는 청소년들이 이럴진대 봉사단체를 운영하는 주최측은 더 말할 게 없다. ‘유스웨이브’도 마찬가지다. 연간 1억원 정도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당장 내주 월요일부터 7박8일 동안 열리는 ‘2004년 국제 청소년 학교’ 운영에만도 4천500만원이 들어간다. 100명이 숙식·숙박을 함께 하면서 모국을 체험하는 데 경비가 꽤 많이 쓰일 건 뻔하다. 다행히 문화관광부가 50%를 지원하지만 대표자가 부족한 돈 2천여만원을 부담한다. 물론 사비(私費)다.

사정이 이런 데도 경기도나 군포시는 당초 협조키로 한 에버랜드와 케리비안베이의 단체입장 하나 도움을 주지 않는 모양이다. 쓸 데 라곤 하나 없이 “ ‘유스웨이브’가 市단위 단체냐, 도단위 단체냐를 놓고 아직도 왈가왈부한다니 답답하고 한심하다. 도대체 봉사단체를 왜 시단위, 도단위로 구분하려는가. ‘유스웨이브’는 국제단체로 알려진 지 이미 오래됐다.

해마다 여름방학 동안 ‘서머스쿨’로 개설하는 ‘국제 청소년 학교’는 ‘유스웨이브’ 청소년들이 직접 참가하여 1대 1로 러시아 · 중국 · 일본 · 미국 등 해외 교포 청소년에게 고국을 알리는 봉사 프로그램이다. 올해엔 53명의 교포 청소년이 찾아 왔다. 이들은 민족사의 수난을 겪었던 사할린, 일본, 연변 지역등에 거주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 종전 후 귀국하지 못한 조부모의 역사적 상흔을 치유받지 못한 채 모국어와 모국의 역사를 상실한 현지인으로 성장했다. 일반 해외 교포 청소년들보다 훨씬 가중된 심리적, 사회적, 가정적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하지만 이들은 조국(유스웨이브)의 초대를 받아 9일부터 16일까지 한국에 체류하면서 경복궁·서대문형무소·청와대·한국민속촌·경기도청·수원 화성(華城)·태평양화학박물관·양평 나눔의 집·명성황후 생가·신륵사·세종대왕능·에버랜드·광복절 중앙경축식·독립기념관·제암리 항일 유적지 등을 순례하며 역사를 배운다.

알려지기로 ‘유스웨이브’ 대표는 대학 교수도 그만 두고 봉사활동에 뛰어든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불가사의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도 그는 “봉사가 좋아서 한다”고 청소년처럼 웃는다. 우리 사회가, 인류가 어둡지만 않은 것은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밝혀 주기 때문이다. 촛불은 불원간 횃불이 될 것이다. 바라보니 ‘유스웨이브’의 물결이 깊고 푸른 강물처럼 도도히 흐른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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