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축구전쟁

중·일전쟁이 붙었다. 베이징 아시안컵결승전이 그 무대다. 지난 7일밤 노동자경기장서 열린 축구 결승전서 중국이 일본에 1-3으로 패하자 관중들은 전쟁과 같은 난동을 일으켰다. 일본 선수단이 탄 버스를 에워싸고 일장기를 불태우며 돌멩이 등을 던지는 등 한동안 길을 막는 과정에서 일본대사관 공사가 탄 승용차 유리창이 깨졌다. 이어 일본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과 일본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중국 국가를 부르면서 철야시위를 벌였다고 외신은 전했다.

네티즌들은 심판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심판과 일본 선수들을 절대로 살아서 나가게 해선 안된다”는 협박성 글로 인터넷을 도배질 했다. 그러나 중국 언론은 관중의 이런 소란엔 눈을 감았다. CCTV는 일본의 두번째 득점장면 방영을 되풀이하면서 “오심이 일본을 도왔다”며 오히려 거친 관중을 두둔했다. 이에 대한 일본측의 반응은 경멸에 가깝다. 한 정치인은 “중국의 민도가 낮다”면서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나라의 국민적 자질에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말했다.

축구전쟁은 남미에선 흔히 있었던 일이다. 유럽에서도 더러 보아왔다. 그러나 이들의 축구전쟁은 경기 자체에 국한한 것이었다. 이번 중·일 축구전쟁은 경기 너머에 있는 중국의 반일감정 표출인 점에서 문제가 다르다. 중국 관중들은 ‘일본 상품배격’ ‘국가충성보답’의 구호를 내걸었다. 단순한 축구 자존심의 감정 노출이 아닌, 국가 자존심의 감정싸움인 게 베이징 축구전쟁인 것이다.

중·일 축구경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에도 있었다. 전례없이 중국측 감정이 폭발한 것은 족구(足球·중국은 축구를 이렇게 말한다)진흥을 위해 그동안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온 데 대한 기대감도 물론 연유한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배경은 중국 국민의 자신감이다. 이젠 살만큼 살게 됐으므로 일본에 꿀릴 게 없다는 사회적 정서가 짙게 깔려 보인다. 두 나라의 패권주의 다툼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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