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혹은 의학의 승리’라는 연극은 1923년 파리에서 초연됐다. 20세기 초 한 유럽 산골마을의 의사가 순진한 산골 사람들에게 각종 질병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어 병원장사에 성공하는 내용이다. 의사 ‘녹’은 병실을 북적거리게 하기 위해 마을의 학교 선생을 구슬러 마을 주민들에게 미생물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하여 강의토록 한다.
그런데 연극 속의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전개된다. 외신을 보면 요즘 독일 베를린에 있는 카데/베진스키사는 최고 전성기에 있는 남성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드는 남성 ‘노화신드롬’을 알리는 데 열심이다. 이 신드롬은 남성 폐경기를 의미한다. 이 회사는 여론조사기관과 홍보회사, 광고대행사, 그리고 의학 교수들을 동원하여 남성 폐경기를 공개적으로 홍보하여 기자회견을 열어 ‘남성호르몬 생산기능이 점점 쇠퇴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이들이 이런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는 지난해 4월 독일시장에서 두 가지 호르몬의약품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산업국가에서 인간에 관한 질병과 증후군, 장애, 전염병의 수는 무려 3만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각 질병마다 새로운 알약이 하나씩 나오며 새로운 약이 나올 때 마다 이에 맞춰 새로운 질병이 하나씩 더 생기고 있다고 한다. 질병 고안자들이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려고 하기 때문이다. ‘없는 병도 만든다’, 즉 약 팔려고 병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없는 병도 만드는’ 제약회사들은 연구보다 마케팅에 돈을 더 많이 쏟아 붓는다. 자사 제품을 시장에 대량으로 팔기 위해 수익의 3분의1과 전 직원의 3분의1을 투입한다. 제약회사들이 없는 병도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의사, 학자, 기자들도 동원된다.
2002년 6월 하버드 의과대학의 조사 결과 미국의 주요신문 33개와 4대 텔레비전 방송에 실린 3가지 의약품 기사가 이를 증명한다. 대상기사 207편 중 40%가 의약품의 효과를 증명하는 데이터와 수치가 빠져 있었고, 수치정보를 제공한 124편 중 83%도 단지 해당약품의 상대적 효용성만 보도했다. 한국의 제약회사들은 설마 이렇게 하지 않겠지 싶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어 안심이 되지 않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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