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만해축전’ 전국고교생 백일장에서 최고상 대통령상은 ‘칼’이라는 산문을 쓴 여고생이 차지했다. 도장쟁이 아버지가 도장을 팔 때 사용하는 ‘칼’을 감동있게 그렸다. 아버지의 손에 수 많은 상처를 입힌 ‘칼’을 여고생이 낭독할 때 물소리, 바람소리 들려오는 야외 시상식장이 숙연해졌다. 12일 만해축전 행사 중 하나인 제8회 만해대상 시상식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제8회 만해대상은 소설가 황석영(문학부문), 데이비드 매켄미 하버드대 교수(학술), 임권택 영화감독(예술), 법타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장(실천)이 상을 수상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에게 주어진 평화부문 대상은 시드니 바파나 쿠베카 주한 남아공 대사가 대신 받았다.
전국고교생 백일장 시상 후 실내악단의 생음악을 배경으로 시와 음악의 밤이 이어졌다. 신세훈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비롯한 시인들이 자작시를 낭송하였다. 이근배 만해마을 시인학교장은 서정주의 詩와 김기림의 수필 등을 유장한 목소리로 암송, 감동을 주었다. 이날 밤 주최측은 함지박에 찐감자와 옥수수를 가득 담아 들고 다니며 관람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어 강원도의 인심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내설악의 푸른 숲이 뻗어 내린 십이선녀탕 계곡에 자리 잡은 백담사 만해마을에선 8월 2일부터 15일까지 참으로 많은 문화예술행사가 펼쳐졌다.
시조문학 심포지엄·만해선사 서거 60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현대시 심포지엄(1)·만해축전 학생 사생대회·시인학교 입교식·만해축전 입재식·해곡 노태증 서예초대전·일오점등의 밤·비교문학 심포지엄·‘님의 침묵’ 서예대전 개막식 및 시화전·대동축구대회·전국고교생 백일장·2004 통일시전·현대시 심포지엄(2)·만해를 주제로 한 시서화전·한국문학 심포지엄·불교문학심포지엄·물현금의 밤·광복절 기념식·학생 씨름대회·시인학교 수료식·만해축전 회향식·만해 선사 열반 60주년 기념 특별공연 등이 연이어 개최됐다. 이 가운데 한국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는 ‘현대시와 선시의 경계’를 통해 ‘현대시와 불교의 영향’, ‘시인들은 해탈하려 하는가’, ‘현대시와 선시(禪詩)의 관계’, ‘ 禪과 현대시의 만남과 그 난제’를 집중 조명했고, 한국문인협회는 ‘만해사상과 통일문학’에서 ‘만해 선사의 일대시교(一代時敎)’, ‘한용운의 실천과 사상과 禪과 문학’, ‘만해의 민족정신과 통일문학’을 전망했다.
만해(萬海·卍海) 한용운(韓龍雲)! 그는 진정 누구인가. 만해 선사(禪師)는 불교사상사, 민족운동사, 문학예술사에 걸쳐서 위대한 공적을 남긴 우리 나라 근대사상 최대 인물의 한 사람이다.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박철마을에서 태어난 선사는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한 후 백담사(百潭寺)에서 출가하여 김연곡 스님으로부터 법호 卍海와 법명 龍雲을 받아 승려생활을 시작하였다. 선사는 명저 <불교유신론> <불교대전> 등을 통하여 이 땅의 불교를 근대화하는 데 진력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는 불교계 대표로 33인에 참여하여 ‘공약삼장’을 기초하고, ‘조선독립의 서’를 집필하는 등 민족운동의 횃불을 높이 치켜 들었다. 또한 선사는 1925년 백담사에서 시집 <님의 침묵> 을 써서 생명사상, 사랑의 철학을 겨레의 가슴에 심어 주었다.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 냉돌 위에서 끝내 지조를 지키며 순국하기까지 선구한 자유사상, 평등사상, 민족사상, 민중사상, 진보사상, 통일사상, 평화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중한 민족사적 덕목으로 칭송된다. 한 사람의 생애가 이렇게 다방면으로 연구되고 논의된 일은 일찍이 없었다. 님의> 불교대전> 불교유신론>
“세상 밖에 천당이 따로 없고(世外天堂少) / 인간에게는 지옥도 많은 법(人間地獄多) / 백척간두에서 서 있기만 할 뿐(佇立竿頭勢) / 왜 한걸음 내딛지는 않은가(不進一步何)”
“먹구름 걷히고 나니 외로운 달 드러나고(鳥雲散盡孤月橫) / 찬 달빛은 먼 나무까지 뚜렷하게 비추네(遠樹寒光歷歷生) / 학 날아간 빈 산에는 지금 꿈마저 없는데(空山鶴去今無夢) / 깊은 밤 누군가 잔설 밟으며 가는 소리(殘雪人歸夜有聲)”
일제의 식민지배로 우리 민족 전체가 고통에 빠져 있을 때 이 게송(偈頌)을 지은 만해 선사가 백담사에서 “아아, 임은 갔지마는 나는 임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하고 절규한 ‘임’은 정말 누구인가! 조국인가. 연인인가. 만해마을 계곡에서 곡주(穀酒)를 마시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으나 ‘임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만해마을의 밤은 점점 깊어 갔다. 백담사의 새벽이 오고 있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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