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시대일수록 우리이름 필요하다

한글학회·국어문화운동 등이 국민은행과 KT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기업이미지 통합 과정에서 한글 제호를 버리고 ‘KB ×b’ ‘KT’ 등의 영문 제호를 택해 간판 등에 한글을 병기하지 않은 것은 옥외 광고물 등 관리법 위반”이라고 판결한 것은 타당하다. 이는 외국어 간판을 일일이 단속하지 않고 있는 일부 지자체 관행에 법원이 일침을 놓은 것이어서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재판부가 또 “현대사회에서 모국어의 중요성만 강조하는 것은 국제관계 고립을 초래하는 편협한 태도일 수도 있지만 공동체의 공용어를 지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무게를 더해 준다.

비록 시대의 변천이라고는 하지만 근년에 들어 선경, 금성 등 우리 귀에 익었던 기업이름들이 사라지고 SK, LG 등이 나타난 것은 정체성의 위기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물론 세계적인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삼성, 현대 등이 원래의 이름을 쓰고 있어 매우 다행스럽지만 그 반면에 수 많은 기업들이 국제화를 내세워 기업이름을 외국어로만 개명하는 일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대기업의 경우 상대가 우리 나라 소비자만이 아니고 여러 외국인 점에서 문제가 단순치는 않다. 여러 나라 사람이 두루 기억하기 쉽고 발음하기도 쉬운 이름이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를 상대로 한다고 한국이라는 특징을 숨기고 감추는 식으로 기업이름을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은 지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 세계 제2의 경제대국답게 세계적인 기업을 여럿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쓰비시, 토요타, 히타치, 마쓰시타, 닛산, 혼다 등 어느 것이든 일본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 것이 없다. 그 이름만으로도 일본 기업임을 세계인은 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알리안츠, 지멘스, 다임러크라이슬러, 폴크스바겐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 이름 역시 독일어 느낌을 풍김으로써 독일 기업임을 보여 준다.

세계화 시대일수록 각 나라, 각 민족의 정체성이 더욱 강조돼야 하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한국의 비중이 커지고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한국은 제 색깔을 또렷이 드러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세계화 시대임을 이유로 특징 없는 이름으로 마구 바꾸는 것을 자제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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