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지난 1994년 정기국회에서 ‘국가유공자 예우등에 관한 법’ 42조 3항이 개정됐다.
‘가료비는 국가가 부담한다’는 본문대목은 그대로 놔두고 그 뒷부분의 ‘다만 지자체의 의료시설에서 가료를 행한 경우 국가가 그 일부를 부담한다’는 단서 대목 중 ‘국가’가를 ‘지자체’로 개정했다. 그러니까 국가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지만 다만 지자체 의료시설에서 가료를 받았으면 주로 지자체 부담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개정 법률이 실린 관보 내용을 출판사가 잘못 해석하여 본문의 ‘가료비는 국가가 부담한다’ 대목의 ‘국가’를 엉뚱하게 ‘지자체’로 고쳐 법전에 실음으로써 무조건 지자체 부담인 것처럼 된데 있다.
토씨 하나 가지고도 어감이 다른 법률 조문을 출판사가 멋대로 고쳐 실었다는 것은 정말 황당하다.
그러나 이 법전의 오류를 발견치 못하고 그대로 적용한 판사도 좀 그렇다. 잘못된 법전내용을 옮겨본다.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가료에 소요되는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다만 지자체의 의료시설에서 가료를 행한 경우 지자체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일부를 부담할 수 있다”고 된 것은 본문과 단서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상한 소리인데도 묵과됐다.
희귀병을 얻어 제대한뒤 숨져 국가유공자로 결정된 아들의 치료비를 아버지가 국가에 청구한 소송에서 판사가 잘못된 법전을 보고 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는 그 아버지가 서울시를 상대로 재차 소를 제기했으나 서울시는 법제처에서 낸 법령집에 적힌 관련 법률을 보이며 ‘서울시 의료시설에서 가료도 받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 국가 부담이지 왜 지자체 부담이냐’며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밝혀졌다.
잘못 실린 법전이 10년이나 그대로 방치되면서 국민에게 억울한 피해를 끼친 건 법치사회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다. 출판사 법전은 믿을 수가 없으니 법제처가 발간한 ‘대한민국 법령집’을 보내 달라는 말이 판사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을는지 모르겠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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