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 무더운 여름에

이렇게 찌물쿠는 여름일 줄 몰랐다. 올 여름은 무더울 것이라는 걸 미리 알긴 했었다. 기상청의 예보 덕분이었다. 그러나 감때사나운 가마솥더위와 열대야에 곤죽이 되도록 시달릴 줄은 몰랐다. 대기의 조화이겠으나, 정체모를 난뎃손님처럼 끼어든 높은 습도는 몹시 끈끈해서 휘어내기가 어렵다. 불쾌하다.

가진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골프채를 메고 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지만, 없는 사람들은 생활고와 무더위에 덜미를 잡혀 한숨을 토하고 있다. 물가고는 서민들을 옥죄고 있는 가운데 실업자와 빈곤층의 한숨소리는 애처롭다.

정치권은 ‘개혁’ ‘상생’ ‘민생’을 크게 외친다. 고루 잘 살게 하겠다는 다짐 같아 솔깃하다. 그러나 정치의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빤빤하고 오만하다. 그러므로 의심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다. 개혁이란 말은 얼마나 당차고 수련한가. 국민이 바라는 개혁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사회제도의 본질을 다치지 않고, 유해한 것을 골라 발전에 적합하도록 변혁시키는 것이다.

정치인은 다양한 의견 속에서 함수를 찾아내는 기량과 덕목을 가져야 한다. 개혁을 하는데도 다른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이견이 성립되는 걸 모순(矛盾)이라고 한다. 법을 가장 높은 가치로 여겼던 한비(韓非)가, 유가(儒家)의 덕치주의를 비판한 우화의 밑바닥에도 모순은 깔려 있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내세우는 주장 속에 이끗을 숨겼다면 그것은 구태와 다르지 않다. 상생이라는 말은 서로를 인정한다는 뜻이고, 상극은 상대를 배격하는 것이다.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이치이다. 여야는 17대 총선에서 상생을 비롯해 많은 걸 다짐했다. 국민 모두가 잘 살게 하겠다는 맹세였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우리의 정치는 상극과 혈통이 같다는 의구심이 든다.

지난달엔 여야가 국가의 정체성을 놓고 목줄띠를 곤두세웠다. 한나라당은 정권을 향해 ‘전면전’ ‘사상전’을 들고 나왔다. 발끈한 여당은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 가운데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단죄의 대상으로 점 찍힌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공격했다. ‘아프리카 반군’ ‘남미 해방 전선’과 같은 격한 표현도 나왔다. 그와 같은 전투적 용어는 듣기에 섬뜩하다. 모처럼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릴 낸 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해 남과 북이 공동대응을 해야 한다며 평양방문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또 삐쳤다. 지난 1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친일 반민족행위 및 인권 침해행위의 청산을 위해 국회에 진상규명위를 만들자’는 제의 때문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적극 지지한다’고 나섰고, 한나라당은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경축사’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42년 천사오위(陣紹禹)를 교조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천사오위는 캐나다의 공산당 기관지에 마오쩌둥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으며, 모스크바로 떠나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교조주의란 독단적 신념이나 학설에 맞춰 모든 사물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많이 쓰여진 것이다. 교조주의는 ‘좌’, 수정주의는 ‘우’였다.

이 나라에도 좌와 우는 있다. 하지만 그건 자유민주주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건전한 보수와 발전적인 진보이다.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어떤 명제이든, 그것을 둘러싸고 이쪽과 저쪽은 있는 법이다. 액체인 술은 불을 만나 비로소 탄생한다. 그렇듯 상생은 대자연의 원리이기도 하다. 과거사문제를 놓고 지루하게 티격태격하는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어느 선에서 합의가 되든지 시급히 마무릴 지어야 할 문제이다.

내수는 고개를 들 줄 모른다. 노동력은 가졌어도 팔 곳이 없다. 가난에 못 견뎌 동반자살도 한다. 저잣거리의 절박한 소리는 ‘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원초적인 뜨거운 절규이다. 그 때문일까. 이 여름은 몹시 무덥고 답답하다.

/ 언론인·소설가

신세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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