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50년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연극축제 프랑스의 아비뇽을 다녀온 적이 있다. 물론 수원화성연극제와의 교류건과 축제의 노하우를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우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부러웠던 것은 그들의 작품이 아니었다. 극장 공간이었다. 꿈의 공간이었다. 허름한 창고, 성당광장, 성벽 아래, 학교 숲속, 체육관, 주차장, 공장, 깎아지른 절벽, 거리…. 여기에선 연극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완전한 토털아트쇼였다. 전람회, 시낭송, 록그룹 연주 등 아마추어, 청소년 발표에서부터 프로까지 너무나 다양하고 맛이 다르게 다가왔다. 이미 유럽연극 연출가 상을 무용가 피나바위시가 받는 문화였다.
크로스오버- 퓨전은 이미 그렇게 아비뇽에 와 있었고 고지식한 한국문화로선 많이 혼란스러웠지만 어느새 한국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 체육관에 가득 모래를 깔아놓고 진짜 말들이 내달리고, 한쪽에선 한국 판소리가 불려지고, 다른 한쪽에선 일본 씨름 스모가 연출되는 광경을 생각하면 웃기는 노릇 아닌가? 입장요금이 한국돈 10만원을 웃돌았으니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던 필자는 정말 맥이 다 풀릴 정도였다. 저것도 연극이라니,
이 시대를 대표할수 있는 극장 형태는 어떤 것일까?
이 시대는 모든 형태의 극장 중에서 작품에 어울리는 극장을 선택해서 쓰는 시대로 변했다. 그러나 수원의 극장과 전시장들은 직사각형을 벗어나지 못한다. 직사각형 공간에서 느끼는 맛이 비슷비슷해진다면 큰일이 아닌가. 벽돌 찍어내듯 말이다. 연극으로 말하자면 관객이 제 4벽을 통해 몰래 숨어서 들여다보는 사진틀 무대의 사실주의 연극에서 한치도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아테네 시민 모두가 함께 모여 공동의 큰 문제를 함께 다루는 것 같은 원형무대는 없다. 우리 고유의 탈판무대도 없다. 관객들이 신분에 따라 나뉘어 앉아 무대를 에워싸고 구경하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돌출무대도 안 보인다.
무대미학이란 것이 있다. 한 작품에 어울리는 공간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한 완전한 공간, 상상력을 보다 자유롭게 실현시킬수 있는 공간, 즉 극적인 공간을 찾게 된다. 물론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찾고있는 것이다. 꿈속에서나 본듯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특별한 공간, 관객에게 꿈을 줄 수 있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요지경 같은 공간을 꿈꾼다.
수원시민은 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한국담배인삼공사(KT&G)를 멋진 문화공간으로 연출해 낼 수 있다. 이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시민의 힘이 아파트 단지가 아닌, 복합 문화공간을 창조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것이 수원지역 예술인들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의 꿈인 것이다.
/김성렬 극단 城대표·연출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