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의장의 ‘사상논쟁’ 괴담

상생의 정치는 아무래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신임 기자간담회 조짐이 이러하다. 과거사 청산의 여야 입장이 서로 다른 마당에 첫 취임 회견의 관행이던 덕담은 못한다 할지라도 험담이 지나쳐도 너무 했다는 것이 객관적 판단이다. 이 의장이 새로운 사실처럼 제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급장교 시절 얘기는 구문이다. 그 무렵에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았던 사실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이 때문에 적잖은 곤혹을 치르고 진급이 늦어졌다는 말이 있었다.

1963년 10월 제3공화국 들어 실시된 직선제의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시 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최대 정적이던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는 사상논쟁을 제기했다. 윤보선은 박정희에 대해 초급장교 시절의 사상적 의문을 제기하고 심지어는 1950년대의 남파 거물 간첩 황 아무개와의 접선설을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윤·박 두 후보의 공방이 치열했던 이른바 사상논쟁은 5대 대통령 선거의 최대 이슈였다.

이 의장이 이토록 해묵은 40년전의 대(對) 박정희 사상논쟁을 재연하는 이유를 잘 알 수는 없지만 이런 논쟁이 과연 유익한 가를 생각해 본다. 특히 박정희가 군내 공산주의자 프락치 총책이라는 주장은 이 의장이 어떤 근거를 갖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심히 황당하다. ‘박정희가 자기가 포섭했던 사람을 다 불어 그 사람들은 죽게하고 자기만 살아났다’는 말은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다. 박정희가 일본군 중위를 지내고 군사혁명을 일으키고 유신통치를 한 것에 대한 여권의 정치적 공격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의 쟁점으로까지 떠올라 이미 정리된 과거사까지 새삼 문제 삼고자 하는 사상논쟁 재연은 한술 더 뜬다고 보아 전율을 갖게 한다.

열린우리당은 정국을 주도할 책임이 있는 집권 여당이다. 문제는 집권 여당의 신임 의장 일성이 어려운 민생은 재쳐둔 채 캐캐묵은 사상논쟁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전직 대통령을 지나치게 폄훼하는 데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곧 상생의 정치다. 여권의 끝없는 저주는 상생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친다. 이 의장의 신임 기자회견 내용은 이래서 민중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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