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관계와 법

‘부부 간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은 말인즉슨 옳다. 몸이 불편하거나 피곤한 데도 치근덕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남편이나 아내 어느 쪽이든 입장은 다 같다.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것이다.

‘내 아내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남성들의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말인즉슨 맞다. 또한 ‘내 남편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여성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가 있다. 말인즉슨 이도 옳다.

얼마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성관계를 거부하는 아내에게 완력으로 대들어 상처를 입힌 남편에게 강제추행치상죄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의 유죄판결을 내린 게 화제가 됐었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들 부부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아내되는 사람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아이들 방에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도 남편되는 사람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저항하는 아내를 안방으로 끌고가 힘으로 밀어 붙이다가 상처까지 입혀 형법상의 강제추행치상죄로 아내로부터 고소당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비정상적 관계이기 때문에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 탈이 없는 부부간엔 아무리 남편이 야속하고 또 비록 아내가 섭섭하여도 고소로 법정까지 끌고갈 만큼 사건화할 리는 만무한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같은 데선 법으로 부부 강간을 인정하는 게 말인즉슨 여권보호를 위해 바람직하긴 하나 이 역시 정상적 부부 사이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립될 수 없는 일이다.

부부 관계를 고소로 해결하려는 부부는 이미 사실상 부부가 아닌 것이다. 또 부부 관계를 법으로 지나치게 간섭하려고 들면 나빠졌던 사이가 좋아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수가 있다.

혼인생활을 깰 요량이 아니면 법을 너무 좋아하는 게 좋지 않다. 남편이 유죄판결을 받은 문제의 그 부부는 고소가 있은 뒤 이혼하고 말았다. 법은 부부를 확인해 주는 천사이면서도 파경을 확인해 주기도 하는 악마의 두 얼굴을 지녔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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