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와서 근무하다 보니 정조(正祖)의 발자취와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의 머리를 치게 하는 생각은 ‘쇼맨쉽’을 통하여 통합에 이르게 하는 탁월한 군주로서의 리더쉽이다.
적어도 내 짧은 상식 안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임금 중 정조만큼 쇼맨쉽의 원리를 꿰뚫고 있는 군주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쇼맨쉽’을 정직하지 못한 관점에서 바라 보는 시각도 있지만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도모하는 일인 정치는 일종의 ‘쇼’적 요소를 내포하게 마련이다. ‘쇼’를 해서라도 만백성을 편하게 해준다면 정치가 ‘道’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아무튼 정조가 벌인 화려하고 절묘한 ‘쇼’ 중 하나가 아직도 세상에 회자되고 있는 ‘정조임금의 화성행차’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시해한 노론 벽파의 음모가 상존해 있는 살얼음판과 같은 정치현실을 탕평의 지혜로 타개한 정조가 왕권의 안정과 강화를 위해 바로 ‘화성능행차’를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고 개혁정치의 새 이상을 펼 수도가 될 화성은 정조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의 땅이다. 실록은 이 행차가 재위 24년간 66회, 1년 평균 3회를 기록했다고 전하는데 그 중 절반이 아버지 묘소참배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조는 화성행차를 아직도 잠재되어 있는 적대적 권신세력에 대한 시위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권신들이 아니라 백성과의 접촉을 확대하여 이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치적 ‘쇼’의 하이라이트가 지지대 고개에서의 ‘빅쇼’가 아니었나 싶다. 지지대고개는 지지대碑가 말해주듯 정조임금의 어가행렬이 지지부진하던 곳이라는 유래에서 불려진 이름이다. 지금은 빼곡한 건물 때문에 당시의 지형을 찾아 볼 수 없지만 나지막한 구릉지대를 사이에 끼고 지나가는 이 화려한 구경거리를 백성들이 외면할 리 없다.
구름처럼 운집한 백성들을 본 정조가 이를 놓칠 리 만무하다. 기왕에 직접적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개혁적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그였다. ‘멈춰라’를 반복하며 멀리 융건능이 있는 화산을 향하여 효심의 낙루(落淚)를 떨구는 군주의 모습에서 도열한 백성들은 비장한 전율을 맛봤을 것이다. 정조는 매스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던 그 시대에 이미 구전 마케팅의 원리를 꿰뚫고 있는 명군 지도자다. 소수파의 추대로 임금이 된 사람으로 불안한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펼쳐지는 ‘빅쇼’는 66회의 행차기간동안 계속됐다. 정조는 가마에서 내려 울고 또 울었다. 이 모습을 본 민초들의 심정은 어떠하였겠는가.
맞는 가설일 지는 모르지만 유교사회에서 효(孝)의 끝 간데는 충(忠)이다. 만 백성은 군주의 극진한 효심 앞에서 우러나온 충성을 다짐했을 것이다. 마음을 움직여야 권력이 움직이게 마련이다. 권력이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권신들이 감히 딴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천의 인마가 동원된 행차의 비용은 비쌌지만 이 쇼를 통하여 잠재적 적대세력인 기득권 세력도 슬그머니 무릎을 꿇었다. 조선왕조의 제2르네상스를 열었던 정조임금이 직접 연출한 ‘빅쇼’얘기다.
요즈음 이러한 통치자의 쇼맨쉽은 간곳없이 사라졌다. 리멤버12·19에서 지지집단과 함께 외친 ‘시민혁명’에 이어 엊그제는 ‘강남사람과 함께 수도권 이전정책을 논할 수 없다’는 요지의 통치자의 발언이 세간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분열의 언어는 ‘원맨 쇼’의 매개일 뿐이다.
지금은 모든 세력을 포용하는 ‘빅쇼’가 필요할 때다. ‘빅쇼’의 구경이 사라진 세상속의 백성은 곤궁하고 암울하다.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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