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일을 또 겪는다. 국립경찰이 돈이 없어 외상으로 휘발유를 대다보니 외상값이 밀려 주유소마다 거래를 거절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본지 보도는 도내 경찰서마다 크고 작게 걸린 수개월동안의 외상값이 30억원이 넘는다고 전했다. 112순찰차, 형사기동대, 시위진압차량 등 공식 치안유지 차량이 이처럼 외상으로 휘발유를 대는 나라는 아마 우리 말고는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외상값을 갚지않을 리는 만무하지만 국립경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지금은 안그러겠지만 경찰서 형사과나 일선 파출소의 수용비가 턱없이 모자라 예컨대 전화사용료를 직원들 호주머니에서 털거나, 아니면 관내 유지들에게 협조라는 이름으로 폐를 끼쳐야 했던 적이 있었다. 이런 게 다 현실성 없는 예산에 기인했던 관폐로 이젠 마땅히 시정됐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수용비도 아닌 치안유지 차량의 유지비가 모자라 연료값을 외상으로 대지 않으면 차를 세워놔야 할 판이니 도대체 예산편성이 왜 이리 됐는지 그 책임 소재가 궁금하다. 이러고도 잘못인 줄 모르는 무딘 불감증은 가히 충격이다.
정부는 추가신청을 하면 결국은 정산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예산집행이 이래서는 안된다. 짐작컨대 연료값만 외상인 게 아닐지 모른다. 차량정비 등도 비슷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예산은 국가 기관이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 편성된다. 국가 기관으로 하여금 외상 거래를 하도록 하는 규정은 예산 관련 법규나 지침 등 그 어디에도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규에 없어 있을 수 없는 외상을 경찰이 감당하지 않으면 국가업무가 마비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예산편성에 흠이 있음을 드러낸다.
경찰연료는 민생치안의 동력이다. 원천적으로 모자란 차량 연료비를 현실화해야 하고 값이 치솟기만하는 인상 분도 감안하여야 한다. 획일적 배정이 아닌 치안수요의 다발지역 특성도 또한 미리 배려할 필요가 있다. 예산액 영달이 집행에 차질 없도록 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기획예산처의 책상머리 경직성을 타개, 일선 경찰의 실정이 예산에 반영되는 경찰청과 행정자치부의 노력이 있기를 당부한다. 경찰차를 외상 연료로 굴리고 경찰이 외상값에 시달리는 부끄러운 일이 더 있어서는 안된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