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비

그건 분명히 볼썽 사나운 모습이었다. 장관일 것 같으면 국무위원이다. 대통령은 물론 더할 수 없는 지존이긴 하다. 하지만 나라의 체모엔 격식이란 게 있다. 송나라 재상으로 구준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회식 자리에서 구준의 수염에 음식이 묻어있는 것을 본 장관급 자리의 정위라는 사람이 황급히 다가가 손수건으로 수염에 붙은 음식 찌꺼기를 공손히 닦아냈다.

“여보게! 명색이 당상관의 참정(參政)이 고작 윗사람의 수염을 닦는 일인가. 체통을 좀 지키게!” 구준은 너털 웃음을 터뜨리며 질책했다. (十八史略 宋史 冠準傳)

아마 오는 10월1일 국군의 날엔 비가 와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우산을 받쳐 들어주는 어색한 장면은 없을 것 같다. 지난해 국군의 날 사열차량에 대통령과 동승했던 조영길 국방부 장관(당시)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산을 받쳐주어 빚어진 과잉 의전의 논란을 없애기 위해 사열 전용차에 자동식 비가림막을 설치하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역시 전국시대의 고사다. 어느 제후가 전쟁터에서 독려를 하는 데 군사들이 좀처럼 나아가질 않았다. 그 제후는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짐승가죽의 방패막이에 숨어 독려를 했기 때문이다. 이에 한 충직한 신하의 직언을 옳게 들은 제후는 방패막이에서 나와 몸소 진두에 서서 독전함으로써 대승을 거두었다.

대통령의 건강은 곧 국정과 직결된다. 행여 감기라도 들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을 인색하게 여길 생각은 없다. 그렇긴 하나 대통령이 비가 좀 내린다 하여 국방부 장관이 받쳐주는 우산속에서 국군 장병의 사열을 받는 것은 군의 사기와 직결된다. 이런 논란이 있다하여 자동 비가림막을 설치하는 것도 좀 그렇다.

비가 오면 장병들도 비를 맞는다. 대통령이 장병들과 함께 비를 맞으면서 사열을 받는 모습이 얼마나 장한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폴레옹이 유럽 정복에 나선 전쟁터에서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발견, 유탄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탄우(彈雨)를 무릅쓴 진두지휘를 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추우(秋雨)쯤이야.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