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간도(間島)

간도는 섬이 아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중국의 동남부 길림성 일대의 대륙이다. 청나라가 이 지역의 입주를 불허하는 봉금(封禁) 지역으로 정해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육지 섬 같다하여 간도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옛 발해 수도인 영안 북쪽의 북간도와 두만강 건너 영안 남쪽 동간도, 압록강 너머 옛 고구려 수도 집안 등이 있는 서간도로 나뉘는 데 보통 간도라고 하면 두만강 너머 동간도를 말한다.

역사적으로는 옥저~고구려~발해의 영토다. 고려와 조선 전기엔 여진족이 살면서 조공을 바쳤으며 특히 조선에서는 교역을 열어 생활물자를 대주었다.

노야령산맥과 흑산령산맥의 혼돈강과 목단령산맥의 분지로 천혜의 옥토를 이루는 간도에 우리의 선조들이 대거 이동한 것은 19세기 중반 조선조 철종 때 벼슬아치들의 수탈과 학정에 견디다 못해 이주한 것이 효시다. 이어 1869년 함경도 지방의 대흉년으로 이주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대거 간도에 들어갔고 일제시대엔 굶주린 농민들이 잇따라 이주했다.

간도는 대한독립단·광복단·광복군총영·백산무사단 등의 독립운동 단체가 있었으며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 대첩을 이룬 곳도 바로 간도 땅이다.

간도의 영유권 분쟁이 조선과 청국간에 정계비(定界碑)를 두고 고종 20년(1883년)에 제기된 것이 ‘간도문제’다. 이러했던 게 을사조약(1909년)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이 이 해에 남만주 철도 부설권 등의 이권을 청나라로부터 얻은 대신에 간도 땅의 청나라 귀속을 인정하는 이른바 ‘간도협약’으로 완전히 중국 땅이 되었다.

그러나 ‘간도협약’은 국제법상 무효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간도문제’가 다시 재연될 공산이 짙어 이를 막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 고구려사를 동북공정(工程·프로젝트)으로 왜곡하는 중국의 패권주의다. 중국은 이토록 먼 장래를 내다보며 나라를 경영하고 있다.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근래 간도의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강력히 요청해 왔다. 이에 ‘간도협약’ 무효는 비정부 차원에서 거론되는 일이라며 중국측 요구를 일축한 것은 잘한 일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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