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합동단속반

농림부 차관이 현금 100만원과 골프 공 2박스를 받은 게 적발된 후 추석을 앞둔 공직자들이 더욱 옥죄이는 감시의 대상이 됐다. 사표 낸 걸로 처리됐지만 안타까운 노릇이다. 차관은 관료가 꿈 꿀 수 있는 최고위직이다. 대통령이 바뀌면 아무나 되는 ‘정치적 장·차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직업공무원이 차관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쳐야 한다. 원래 차관이 장관으로 승차해야 하는 데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논공행상이라는 낙하산을 타고 오는 통치자의 측근들 탓이다.

지난 10일 농림부 차관 뇌물수수 현장을 덮친 것은 정부 합동단속반원들이다. 단속반원들의 활동은 주로 관공서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루 종일 잠복하면서 의심스러운 외부 차량을 골라 낸다. 차적 조회도 필수다. 차량 소유주만 확인해 봐도 대충 ‘감’이 잡힌다. 관공서의 휴게실도 단속반원의 주요 활동공간이다. 쇼핑 백 등 큰 봉투를 들고 오는 민원인이 1차 타깃이다. 출입증 교부대장을 뒤져 신원을 확인하거나 민원인의 곁으로 몰래 다가가 전화통화를 엿들으며 방문목적을 탐지한다. 농림부 차관 뇌물수수 적발 때 출입증 교부대장 확인 방법을 썼다. 단속을 무작위로 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 입수한 비위공직자 정보를 토대로 만든 ‘블랙 리스트’를 갖고 있다. 단속이 시작되면 블랙 리스트에 오른 이들의 주변에서 1주일, 길게는 한달까지 잠복하며 동태를 감시한다. 강력계 형사가 따로 없다. 출장을 갈 때나 퇴근할 때는 미행을 하고, 집으로 찾아 오는 민원인을 잡기 위해 주변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다반사다. 단속과정에서 저항하는 이들도 많아 몸싸움하다 크게 다치기도 한다.

문제는 청렴하고 성실한 대다수 공직자들의 자존심이다. 예전에는 추석이나 설날을 전후하여 며칠 동안 관공서 후문을 폐쇄하는 무식한 시장·군수도 있었다. 20여년 전 한 신참 공무원이 “공무원들이 무슨 도둑놈이냐!”고 비분강개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었다. 그 공무원이 지금은 합동단속반으로 일하며 괴로워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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