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제는 1948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시작됐다. 1950년대에는 재정 부족으로 현물수매 방식을 취해 농민들은 농지세를 양곡으로 내거나, 정부한테서 비료를 양곡으로 샀다. 이렇게 조달된 양곡은 공무원 급여나 도시 영세민 배급용으로 쓰였다. 수맷값은 생산비 이하로 책정돼 정부는 반강제적으로 양곡을 수매한 셈이다. 1950년 수매제도는 전적으로 소비자를 위한 제도였다. 1962년 수맷값이 인상되고 정부 수매에 대한 국회동의제도가 시행됐다. 농민을 위한 제도로 전환된 것이다. 1970년대에는 통일계벼만 수매하는 등 농가 소득지지를 통한 쌀 증산에 목적이 있었고, 1980년대에는 소비자를 위한 물가 안정수단으로 다시 바뀌었다.
1988년에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1972년 폐지됐던 국회동의제도가 부활돼 수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수맷값은 농가소득 논리에 따라 인상되고, 방출가격은 물가 논리에 따라 인상이 억제돼 시장왜곡이 심화됐다. 농민들은 점점 정부에 수매량 증대와 수맷값 인상을 요구했고, 정부의 부담이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었다. 1993년 ‘양정개혁’ 단행과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등을 배경으로 1997년부터는 약정수매제가 시행됐다. 이에 따라 수매량과 수맷값도 해마다 감소했다.
올 2월 정부가 ‘농업· 농민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시장원리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결정되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기 위해 추곡수매제를 공공비축제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히자 즉각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정부가 한발 물러서 추곡수매 국회동의제를 폐지하되 추곡수매제와 공공비축제를 병행하는 쪽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시간 벌기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수맷값이 쌀 시장의 기준가격 구실을 하고 있어 수매제 폐지는 시장에 미치는 심리효과가 예상보다 크다.
최근 몇 해 동안 쌀이 좀 많이 생산된다고 하여 마치 무용지물인 것처럼 경시하는 정부 인식은 쌀이 주식인 나라에서 쌀 수입을 개방하려는 것 이상으로 못난 짓이다. 과거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추곡수매제는 다소 이익의 변동은 있으나 농민이나 소비자에게 공히 필요한 제도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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