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평화

인류 역사에서 불량식품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대 로마시대라고 전한다. 알로에 등을 넣은 인공포도주가 문제가 됐다. 1819년에는 양조업자 등 100여명이 맥주에 맥아와 호프 대신 대용물질을 집어넣다가 쇠고랑을 찼다. 첨가물 중 하나인 코쿨러스 인디커스는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다. 우유와 맥주에 물을 타거나 커피에 치커리 뿌리를 넣는 것은 그나마 양심적인 축이었다. 19세기 탄화납이 첨가된 설탕과 광물성 염료로 뒤덮인 사탕, 납, 고춧가루는 도시 빈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20세기에는 음식의 오염도 한 단계 더 타락했다. 비양심적 제조업자의 개인적 비리가 집약 농업과 상업화된 목축업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번져나간 것이다. 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폭발하면서 소수의 농부가 다수의 도시 일꾼을 먹여 살리려면 방법은 많지 않았다.

기술발전의 미명 아래 집약적이고 산업화된 농·축산업은 음식의 오염을 가속화시켰다. 초식동물에 육식 사료를 주면서 벌어진 광우병 파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좁은 우리, 항생제 범벅의 사료, 농약 덩어리의 야채, 화학첨가제가 섞인 가공식품 등은 먹을거리의 오염이 산업사회의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영국은 식량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공격으로 식량부족 사태에 직면했던 영국정부는 전후 식량증산에 온 행정력을 투입했다. 농업보조금이 도입됐고 농약을 살포하는 트랙터가 전 농가에 보급됐다. 소들은 고단위 유기인계 농약을 먹고 살이 올랐고, 양식 연어는 화학약품을 먹으며 고밀도의 양어장 안에서 목숨을 지탱했다. 심지어 정부는 군사용 신경가스에서 추출한 독을 소의 등뼈에 주입해 기생충 박멸을 명령하기도 했다. 결과는 광우병으로 나타났다. 전세계 인간 광우병 사망자 150여명 중 영국이 143명을 차지했다.

지금 온 세계는 식탁에 번지는 재앙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값싸게 대량으로 식량을 얻어내는 것이 실은 값비싼 대가를 유예시킨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고 산다. 소비자가 유기농식품을 사는 개별적인 선택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생산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식탁의 평화는 오지 않는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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