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언어오염

우리의 말은 한글로는 같아도 발음에 따라 뜻이 다른 말이 무척 많다. 예를 들면 간부(幹部)는 짧은 단음인 반면에 간부(姦夫)는 발음이 긴 장음이다. ‘감사’도 단음으로 발음하면 감독하고 검사한다는 뜻의 감사(監査)이지만 장음으로 발음하면 고답다는 감사(感謝)의 뜻이 된다.

방송에서 이를 혼동하여 시청하기에 민망할 때가 많다. 예컨대 “간부(幹部)회의를…” “가(안)부(姦夫)회의…”로 발음하는가 하면 “감사원 감사(監査院 監査)”를 “가(암)사원 가(암)사”(感謝院 感謝)로 턱없이 방송하기가 예사다.

주목되는 대학 교수의 논문이 나왔다. 뉴스 등 방송에서 장·단음의 발음이 잘못되어 엉망인 내용을 분석한 논문이다. 김창진 초당대 교수의 이 논문은 이색적이면서 상당히 구체적이다.

장·단음의 비교 사례로 눈(雪)은 장음이고 눈(目)은 단음인 주요 단어의 예를 수록한 한편 방송인 실명(實名)으로 실태를 집중 분석했다. 방송 앵커 기자 등 36명을 대상으로 A·B·C·D·E 등 5등급으로 나눠 E등급은 당장 방송을 떠나야할 정도로 언어의 오염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E등급이 36명중 무려 23명이나 된다. D등급은 잠시 방송을 중단하고 전문가에게 재교육을 받고 복귀해야 한다는 것으로 11명이다. 결국 대부분의 앵커나 기자들이 엉터리 국어 발음의 엉터리 방송을 한다는 결론이 된다.

방송의 언어 오염은 그렇잖아도 오락 프로그램에서 심각한 실정이다. 이로도 모자라 보도 프로그램까지 설상가상이고 보면 예사일이 아니다. 방송은 말이 생명이다. 정확하게 사용해야할 말을 잘못 사용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언어공해다.

문제는 시정되지 않고 있는 데 있다. 김 교수는 “방송위원회에 10여차례 건의하는 등 잘못을 지적했지만 반응이 없어 실명비판의 극약 처방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명비판을 했다하여 앞으로 나아질 것으로 보기는 좀처럼 어렵다. 외래어엔 사족을 못쓰면서 국어 발음을 홀대하는 것은 국적 상실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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