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기념일이 있다. 11월1일, ‘詩의 날’이다. 1987년 한국시인협회와 한국현대시인협회가 공동 제정, 공포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가장 높다는 미국에도 없고 수레꾼도 시 60편을 암송한다는 프랑스에도 없는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돼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실시된 과거제도를 통해 시를 잘 짓는 사람을 관리에 등용했다. 과거에 장원한 사람은 거의 오늘날의 국무총리·장관·시장·도지사 등에 해당하는 고급공무원으로 승차했다. 그만큼 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깊었다. 지금도 대학교·문인협회·시인협회 등에서 전국 고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면 상금과 함께 대학에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문인협회·시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전국적인 백일장에서 장원하면 대학생, 일반인은 기성문인으로 대우 받는다.
옛날 과거에서 장원하면 등용되는 연유는 시를 문학으로 뿐만 아니라 학식·철학적으로 그 사람의 인품과 인성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詩)는 말씀(言)으로 사찰(寺)을 짓듯이 겸허하고 청결하고 고요한 것이라는 한자(漢字)로서의 뜻을 갖고 있다. 시를 쓰는 마음은 맑아야 하며 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으면 시인 자신은 물론 시를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진리를 품고 있는 것이다. 사찰에서 듣는 풍경소리, 나무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그리고 새소리가 한층 청량한 것은 시심과 시상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경기시인협회 회원들이 1박2일 일정으로 경주 불국사로 가을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특별협찬으로 마련된 ‘2004 경기시인협회 가을여행’은 한국유네스코 경기도협회 임원 10여 명도 동행하였는데 월성원자력발전소를 견학하는 시간도 있었다. 경기시인협회 회원들의 가을여행이 더욱 낭만과 서정을 더 해 준 것은 달리는 버스 안에서의 ‘자작시 및 애송시 낭송회’였다. 만추의 풍경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듣는 정감 넘치는 시는 여행자의 가슴을 고운 빛깔의 단풍으로 물들게 하였다. 토함산 정상에서 바라본 동해 일출처럼 마음을 밝혀 주었다. 경기시협의 가을여행 1박2일은 바로 ‘시의 날’ 이었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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