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소비격차

L백화점이 250세트를 발행해 한정 판매하는 1천만원짜리 ‘프레스티지 상품권’이 판매 나흘 만에 35세트, 3억5천만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하루에 30~40통씩 문의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니 모두 판매될 것이다. 50만원권 상품권 20장과 골드카드(순금 7돈쭝 상당)로 구성된 이 상품의 소지고객은 무료 주차대행, 쇼핑도우미 서비스 등 특별대우를 받는다.

H백화점이 마련한 하루 수강료 30만원의 꽃장식 강좌도 인기다. 세계적 플로리스트(flonist)가 강사로 나서는 특강은 모집 정원(각 100명)이 사흘만에 80%를 넘었다. 하루 수강료가 30만원이면 국내 백화점 문화강좌 중 일일 특강으로는 가장 비싼 수준이다. 100만원대의 백화점 문화센터 ‘클럽형 강좌’도 인기다. 8회 강좌에 수강료가 80만원인데 일주일 만에 모집정원(선착순 14명)이 꽉 찼다. 돈 많은 사람들의 요즘 소비 풍조다.

그러나 돈 없는 사람들의 소비행태는 정 반대다. 재고의류 등을 판매하는 ‘땡처리’업자들의 이른바 ‘체육관행사’에도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다. 가격을 낮추다 못해 방문객들에게 구매와 관계없이 선착순으로 사은품을 준다고 해도 손님들이 찾질 않는다. 찾아온 사람들도 대부분 옷을 들었다 놨다만 할 뿐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

또 다른 기현상은 관공서 구내식당과 기업 구내식당에는 점심시간마다 일반인들이 길게 줄을 늘어 서는 광경이다. 경찰서 구내식당의 경우, 3천원에 점심식사를 내놓는 거의 유일한 곳이어서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이 몰려든다. 올초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70~80명의 외부인이 찾았으나 최근 들어 하루 평균 180여 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시중식당보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직원들의 식사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로 외부인이 관공서·기업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것이다.

극심한 불황이 장기간 계속되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한 잔에 수십, 수백만원 하는 양주를 마시는 귀족들이 모여 성시를 이룬다. ‘길거리표’ 옷도 제대로 사 입지 못하는데 철이 조금 지났다고 하여 수십, 수백만원짜리 옷들을 버리는 사모님들이 여전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지갑에 있는 돈 쓰는 건 괜찮은 데 소비양극화가 너무 심하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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