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판사의 법정신문에 피고인의 말이 길어지면 으레 이런 말아 나온다. “예” “아니오”로만 답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으로서는 “예” “아니오”로만 답변할 수 없는 이면 이유가 있는데도 이는 소명할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할 때가 많다.

재판부의 입장도 있긴 있다. 사건은 폭주하여 기일에 쫓기는 판에 뻔한 일로 여겨지는 사안을 두고 자꾸 부인하면 지연될 수 밖에 없는 고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예” “아니오” 만으로 기대하기는 역시 어렵다.

사법개혁위원회가 재판을 사실상 1심에서 결정짓는 하급심 강화를 도입한다고 한다. 사실심을 1심에서 다 하고 고법에서는 대법원의 법률심처럼 적정성만 집중 심리하는 사후심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개위의 이같은 개혁 방안은 비록 1심 전담 법관을 양성해 재판 역량을 강화한다는 단서가 있긴 해도 심히 위험하다. 우선 이렇게 되면 항소나 상고가 줄어들 것으로 보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다. 상급법원의 재판을 더 받고자 하는 것을 귀찮게 여기는 듯 해보이는 건 기본권 침해다. 모든 국민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으로 항소나 상고를 해봐야 별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심히 온당치 않다. 고법의 기능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것 역시 절절치 못하다.

특히 2심에서 새로운 소송자료 제출을 제한하는 것은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 피고인의 인권침해 요소가 많다. 사개위의 하급심 강화는 피고인의 인권면보다는 사법편의로 보아질 우려가 많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는 판결 이유를 판결문 외에 부드러운 말로 보충해가며 타이르는 판사가 있었다. 서울고법에선 쉬운 판결문으로 선고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 부장판사가 있다.

현실성 없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사법개혁이 먼데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문장의 판결문이나 고압적인 자세,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 내던지는 것도 훌륭한 사법개혁이다. 특히 잘못되거나 억울한 판결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된 사법개혁의 요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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