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임금들은 음식을 적게 여러 번 규칙적으로 먹었다. 하루 다섯 끼였으니 준비도 만만치 않았을 법하다. 게다가 항상 제철 음식이 대령됐다. 봄에는 산나물 모둠인 오신반(五辛盤), 여름 단옷날에는 열을 푸는 천연청량제인 제호탕, 가을에는 풍성한 햇곡식과 과일, 겨울에는 우족을 고아 굳힌 전약 등을 먹었다. 술도 양생술(養生術)의 일부였다. 세종대왕이 한발(旱魃)을 걱정해 술을 들지 않을 때마다 신하와 어의들이 한 목소리로 건강을 걱정하며 음주를 권했다. 궁중 양조법의 일부는 대궐 밖으로 전해져 오늘날 경주 교동법주 등 명주로 재탄생했다.
운동 역시 많은 임금들이 제대로 따르지 않았을 뿐 원칙적으로 강조됐다. 임금들도 요즘 골프 같은 운동을 즐겼다. 서양의 ‘폴로’와 닮은 경기로 알고 있는 격구(擊毬)가 그것이다. 말을 타지 않고 구멍에 공을 넣는 격구도 있었다. 공은 달걀만한 크기로 마노를 깎아 만들었고 채는 두꺼운 대나무와 물소 가죽으로 만들었다. 여러개의 클럽을 사용한 것도 오늘날의 골프와 같다. 빠르게 쳐야 할 때는 가죽을 얇게 댄 채를 사용했다. 매 사냥과 활쏘기도 임금들이 즐긴 운동이었다. 활쏘기는 정신집중력과 절제력을 배양하는 데다 단전호흡까지 있어 임금의 운동으로는 일품이었다.
이렇게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실제 조선의 임금 27명 중 연산군, 광해군을 뺀 25명의 평균 수명은 46세 남짓이었다. 일찍 죽는 임금들은 대부분 주치의의 권고를 무시하거나 비전문가를 끌어들였다가 명을 재촉했다. 충분한 영양 섭취에 비해 너무 적은 운동량, 격무와 끊임없는 스트레스로 조선 역대 임금들은 비만과 당뇨, 고혈압 등 온갖 성인병에 시달렸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눈병과 종기를 달고 살다시피 했다. 특히 ‘성생활’은 당연히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큰 요인이었다. 궁중 내시들은 ‘20세까지 하루 2회, 30세까지 하루 1회, 40세까지 3일 1회…’로 제한하는 ‘옥방비결’을 외우고 다녔다. 양기를 돋우는 대표적 음식으로는 참새를 넣어 쑨 찹쌀죽이 있었다. 임금이 ‘참새죽’을 먹은 날 임금을 모시는 궁녀는 무척 고생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참새가 이렇게 남성에게 좋다는데 멸종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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