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쓰는 연애시는 다양하다. 안도현이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라고 말했던 것처럼 연애는 생의 영원한 주제이고, 삶은 연애로 지탱해 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굳이 남녀 사이라고 못박을 필요도 없고 막연한 ‘연애감정’이라도 좋다.
장석주는 ‘소금’에서 “사랑은 증오보다 조금 더 아픈 것”이라고 했다. 김용택의 ‘섬진강’에 실린 연작들은 섬진강과 그 마을살이에 대한 시인의 절절한 애정표현이다. 김용택은 “연애란 말에서 봄바람에 실려오는 햇풀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기형도는 ‘빈집’에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하고 연애가 끝난 뒤 말했지만, 원재훈은 시작을 얘기했다.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 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의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빗방울들의 소리인 줄도 몰라하면서, 빗방울 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내가, 내 삶에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 줄 몰라한다”고 가을 초입에 서 있는 남녀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강윤후는 “고인돌처럼 생각에 잠겨 먼 데를 본다”고 하였고, 임병호는 연애를 “알콜도 없는 병실에서 수술 받는 환자”라고 말했다. “열사흘 달처럼 부끄러이 익어가는 아픈 성장“이라고도 하였다.
연애는 나이 먹은 사람을 젊게 한다. 아니다. 기본적으로 젊다. “이화에 월백”하다가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든다”는 고전적 구절은 환장할 만한 연애이지만 노회하지 않으면서 능숙한 연애를 한다면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는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다”는 부분이 그렇다. “골짜기에 퍼붓는 눈처럼, 내 사랑도 어디쯤에서 그칠 것을 믿는다”며 굵은 심줄 같은 연애의 운명을 보여준다. 연애시처럼 산에 들에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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