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에 ‘선물 주고받기 운동을 벌이자’고 한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제안한 말이다. 물론 단서는 있다. 과도한 선물이 아닌 정을 나누는 미풍양속 차원의 운동이다. 쌀 개방으로 고통받는 농민들을 위해 우리 농산물을 선물로 활용하자고도 했다. 선물을 주는 대상에 이웃돕기를 꼽은 건 그렇다 해도 ‘직원 격려’를 말한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부정부패 추방을 외쳐대며 암행 감사반으로 하여금 공무원들의 승용차 트렁크까지 불시 검색을 벌인 게 불과 몇달 전의 추석 대목이다. 이런 살얼음판에서도 아닌게 아니라 뇌물성 선물을 받은 공무원이 적발되기도 하여 뇌물 중독의 강심장에 혀를 차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량한 공무원들은 특히 고위직일수록 몸을 사리는 선물 기피증으로 애를 먹었다. 넥타이나 사과 광주리 같은 사소한 선물도 안받고 준 사람을 찾아 굳이 돌려주는 촌극을 벌이곤 했다.
선물을 허용하면 선물이 아닌 뇌물로 확대될 우려가 짙어 아예 못하게 한 것이 선물 금지의 취지다. 공직사회 혁신을 개혁의 이름으로 강조해 온 이 정권의 실세 총리가 선물 주고 받기 운동을 들고 나온 것은 아이로니컬 한 일이지만 이유는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다소나마 내수부진을 타개해 보자는 고육지책인 것 같다. 그렇지만 장기 불황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이미 크게 떨어진 마당에 소비위축의 내수 촉진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다만 이 총리가 시중의 경제사정이 ‘선물 주고받기 운동’을 그 자신이 제안할 만큼 어려운 것을 인식한 것은 비록 뒤늦었지만 불행 중 다행인 지, 이도 아닌 지 잘 모르겠다. 그럼 궁금한 게 있다. 이번 연말연시에는 트렁크 뒤지기 같은 건 없는 건지 알 수 없다. 고위직 공무원 집 앞에 잠복 감시하는 일도 사라질 것인 지 알 수 없다. 집무실에서 고등학교 후배로부터 골프 비용으로 100만원을 받은 현직 장관이 불시 검색에 걸려 옷을 벗은 것이 얼마전의 일이다. ‘선물 주고받기 운동’이 뇌물이 아닌 진짜 선물인 전래 미풍양속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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