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원고료

재단법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서 발행하는 불교계 계간 문예지 ‘유심’이 내년 봄호에 ‘격외시단(格外詩壇)을 신설하고 시 한 편에 원고료 100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혀 문단에 화제가 일고 있는 중이다.

매호 4명의 시인과 2명의 시조시인을 선정해 격외시단 원고를 청탁한다는데 선정대상은 1980년 이후 등단한 문인 중 문학성이 높고 꾸준하게 활동해 온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다고 한다.

내년 봄호에 먼저 청탁한 시인은 정일근·고진하·문태준·박영근씨, 시조시인은 정수자(수원)·오승철(제주도)씨 에게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춘문예 말고 현재 가장 비싼 시 원고료는 포항제철에서 발행하는 사보 ‘포스코신문’이 지급하는 편당 20만원이다. ‘문학과 사회’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 ‘문학수첩’등 대표적인 문예지들의 시 원고료가 편당 10만원이고 보통 8만원(세계의 문학), 3만원~10만원(시인세계·월간문학·현대시 등)이다. 일부 시 전문지의 경우 아예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일간신문, 특히 지방신문의 문화면에 발표되는 시에 원고료를 지급하는 곳은 손꼽을 정도다.

‘유심’의 격외시단 시 한편 원고료가 100만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영혼을 기울인 시인들의 고뇌에 찬 작업에 비하면 또 그리 큰 금액도 아니다. ‘유심’ 이 청탁대상자를 1980년 이후 등단한 문인으로 정한 것은 고육지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원로를 예우하는 문단정황으로 봐서 현재 한국시단에는 1980년 이전 등단한 시인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시인이 원고료로만 생활할 수 있는 게 바람직스러운 일인지는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들리기로는 이달 초 몇몇 시인들이 ‘유심’의 실질적 운영자인 오현 스님 등과 저녁자리에서 장난스럽게 나온 제안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돼 시 한 편에 100만원의 고료를 주기로 결정됐다고 한다.

시인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비싼 원고료를 내건 게 어떻게 보면 쑥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 싶으면서도 시가 돈으로 환산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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