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초 미국 국무성에 근무하던 중년 외교관 헨리 키신저는 아름다운 여성들의 모임에서 자주 목격됐다. 키신저는 질 세인트 존이나 말로 토머스 같은 신인 여배우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질문을 받자 “권력은 최고의 최음제”라고 말했다.
에바 페론은 잠자리를 통해 정상에 오른 대표적 사례다. 아르헨티나 팜파스(대초원)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의 엄마는 하숙집을 운영했으며 에바의 세 언니 모두 그 집에 묵었던 총각들(군 장교·변호사·승강기 기사)과 결혼했다. 에바의 가족들은 적당한 남자와의 성관계가 한 사람의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에바는 언니들과는 달리 좀 더 높은 곳에 뜻을 두었다. 열 다섯번째 생일이 막 지난 후 탱고 가수 아구스틴 마갈디가 마을에서 순회공연을 하고 돌아갈 때 그와 동행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상경했다. 시골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에바였지만 스무살에 섹스 파트너들의 도움을 받아 유명 배우로 성공했고 결국 페론 대통령과 만나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양귀비와 프랑스 루이 14세의 정부였던 풍파두르 부인도 에바 페론과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의 스캔들 역사도 뿌리가 깊다. 미국 초기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의 흑인노예였던 샐리 헤밍스와 오랫동안 성관계를 가지면서 몇 명의 아이를 낳았다.
고금 동서를 막론하고 권력과 성(性)은 상대적으로 끝없는 유혹의 미로를 헤맸다. 한국에도 권력·금력 등을 둘러싼 섹스 스캔들은 많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스캔들 또한 적지 않다. 그런데 한국 정치사를 뒤흔든 10·26사태와 박정희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의 여자관계와 친일성 등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극비리에 촬영을 마치고 내년 2월초 개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비록 가명을 쓴 영화이긴 하지만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여자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삽입돼 있어 파장 또한 적지 않을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스캔들 없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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