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문왕

신라시대 화랑 응렴은 860년 헌안왕이 베푼 연회에 참가했다가 그의 눈에 들어 아들없이 딸만 둘인 왕의 맏사위가 됐다. 이듬해 헌안왕이 죽자 응렴은 왕이 되는데 그가 48대 경문왕이다. 그런데 신라 하대(37대 선덕왕~56대 경순왕)의 정치상황은 쇠락과 멸망의 길을 걸었다. 무력해진 왕권을 놓고 음모와 암살이 난무했으며 진골귀족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는 등 골품제의 모순이 극에 달했다.

경문왕은 자신을 개혁군주로 자리매김했다. 권력의 행보에 따라 나뉜 계파를 하나로 모으고 백성들의 신앙인 미륵신앙과 선종을 끌어 안았다. 신라의 옛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황룡사탑을 재건했으며 지방세력의 독립을 막고 당나라와의 외교를 돈독히 하였다. 이 모든 것이 기득권층인 진골귀족을 배제하고 화랑과 육두품 위주로 추진됐다. 그러나 경문왕의 생애는 마치 전설처럼 전해져 왔다. 그의 재위기간은 15년이었다. 초기 5년은 개혁이 성공하고 평화로운 듯 했으나 그후에는 전염병과 홍수, 가뭄과 기근 등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경문왕은 30대 초반에 죽은 것으로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전한다. ‘삼국유사’에는 “왕이 즉위하자 그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그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두건장이는 죽기 직전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외친다. 대숲에 바람이 불 때마다 이 소리가 나자 왕은 대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했다”고 기록됐다. 이는 경문왕의 손자인 효공왕 이후 박씨 성을 가진 신덕왕이 즉위하면서 경문왕의 권위를 깎아내린 것이다. 경문왕에게는 밤에 뱀들이 둘러싸야만 잠을 잤다는 또다른 불명예도 붙어 있는데 이는 뱀이 화랑과 육두품으로 해석되는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대(竹)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도록 한 까닭은 무엇인가. 만병통치약으로 통용됐던 산수유로 잇따르는 자연재해에 지친 백성들을 구휼해보고자 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요컨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은 뱀과 함께 잠을 잤다’”는 설화는 기득권에 의헤 음해받은 정치적인 가설일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개혁 주위에는 모함이 난무한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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