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04년 10월31일 오후 3시간 ▲장소:창덕궁 후원 ▲나오는 사람:노무현 대통령·유흥준 문화재청장
유:대통령께서는 정조대왕과 비슷하다.
노:내가 어떻게 정조의 격을 따르겠나?
유:개혁(혁신)을 내 건 것, 수도 이전을 하려다가 못한 것, 소장학자들(각종 위원 등) 의견을 중시하는 세가지 점에서 같다.
노:정조에 대해서 잘 모른다….
유:관련 책자를 보내드리겠다.
이상의 대화는 경어를 생략한 채 집약한 요지다. 여기선 노 대통령을 정조대왕과 비유한 것이 합당하지 않은 구체적 내용을 설명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또 문화재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37년 전에 한글로 쓴 ‘광화문’의 광화문 현판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한문으로 바꾸는 게 꼭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창덕궁 후원 면담이 전해진 대로 사실이라면 “정치적인 이유로 현판을 교체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는 유 청장의 말엔 설득력이 없다.
정조대왕은 인재등용에 탕평책을 쓰고 실사구시의 실학사상을 일으켜 문화적 황금시대를 이룩한 민본주의적 계몽군주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의 어필이 명필인 것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조대왕이 ‘門化光’(문화광) 현판을 쓴 사실은 없다. 대왕의 아들 되는 순조가 쓴 광화문 현판은 6·25 때 포격으로 문루가 파괴되면서 소실됐다.
정조대왕이 쓴 비석 글씨의 탁본 중에서 ‘光’자와 ‘化’자를 가려 짜깁기식으로 현판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나마 ‘門’자는 찾을 길이 없어 열개자인 ‘開’자로 ‘門’자를 만든다니 세상에 이러한 현판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싶다. 정조대왕 어필을 욕보이는 것 같아 송구스런 생각마저 든다.
현판보다 더 급한 것이 콘크리트 건물로 된 광화문을 목조로 복원하는 일이다. 현판을 바꾸더라도 짜깁기 현판은 안 된다. 박정희 흔적 지우기가 곡학아세(曲學阿世)로 흐른다는 게 세평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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