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

남아시아 대재앙 ‘쓰나미’에 대하여 가톨릭은 “자연현상에 대해 흔히 신을 비난하기 쉽다. 하지만 하느님이 천상에서 모든 자연재해를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쓰나미 같은 참상에 직면한 기독교인은 이에 대응하는 행동으로 신앙심을 보여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돕는 것이 곧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피해 지역을 돕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돕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는 “자신의 업보에 따라 삶의 길이가 다르다. 희생자들은 각자의 업보에 따른 삶을 살다 갔다. 육체는 소멸하지만 영혼은 불멸이다. 이번 희생자들 역시 죽음의 충격에서 깨어나면 다시 새로운 삶을 받아 태어날 것이다. 그들의 새로운 삶은 어떤 형태든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슬람은 “모든 것이 위대한 알라의 뜻이다. 왜 무고한 사람이 많이 죽느냐는 의문이 들만 하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알라만이 안다. 이번 참사는 삶이 유한함을 일깨워준다. 동시에 짧은 삶 동안 긍정적인 일을 많이 하라는 가르침이다. 세상사는 모두 위대한 알라의 뜻이며 그 뜻은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의 보다 나은 삶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신론(한스틴손·영국인본주의협회 대표)은 “종교로 쓰나미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종교는 재앙을 막아 주지도 못 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기도가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못 된다. 종교를 초월해 인류애로 서로 도와야 한다. 쓰나미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돕는 것이 실질적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얼마 전 김 아무개의 이름을 가진 목사가 “서남아시아의 지진해일로 희생된 사람들은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은 자들”이라고 말한 것은 설교가 아니라 망언이다.

기독교인들도 경악하고 있다. 자연재앙을 종교와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무신론의 주장 가운데 “인간의 문제는 결국 인간이 단합해 인류애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은 모든 종교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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