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무렵 한 노동자 시인은 입춘 날 ‘입춘대길’이라는 詩를 이렇게 썼다.
“난세의 영웅처럼 기다리던 / 입춘날이 오면 우리는 / 장쓰미네 왕대포집에 모여 / 해마다 입춘 환영식을 근사하게 열었다. // 일거리 없어 겨울 내내 연장 가방 속에서 / 몸 뒤틀며 신음하던 고데를 꺼내 / 넹가 망치로 멋지게 두들겨 보며 / 봄나무처럼 우리는 물줄기를 찾았다. // 일에 미쳐 / 돈벌이에 환장해서 / 정말이지 오줌 누고 / 그것 볼 사이도 없었지, / 봄 여름 가을 무관했던 / 여편네 외로운 궁둥이에 장작불 / 지피는 것도 좋지만 / 눈 내리는 저녁 풍경을 바라보며 / 잊었던 사랑의 말씀으로 / 영혼을 적시는 노래도 불렀었지만 / 어서 가거라, 겨울이여 // 도둑질, 역적질만 빼놓고 / 하여튼 움직여 밥벌이 해야지. / 밤 새워 분해한 자본주의론. // 마침내 위대한 우리의 계절이 왔느니 / 고데날이 번쩍이도록 어디 한 번 / 올해도 내집처럼 남의 집들 / 튼튼히 잘 지어 보자 우리의 가슴마다 / 입춘대길 입춘대길 써붙이고 / 막걸리 한 대접 두부 한 쪽 / 육자배기 사발가에 신명이 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했다는 ‘새마을 노래’로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자”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동네 스피커에서 힘차게 울려 퍼지던 시절이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일거리를 찾아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비록 가난을 면치 못했지만 ‘도둑질, 역적질만 빼놓고’ 열심히 일했다.
‘입춘날’이란 시도 있다. “까치들이 / 미루나무 꼭대기서 / 맑은 목소리로 / 인사하는 아침 // 일찍부터 대문 밖에서 떠들어 쌌는 / 쬐만한 아이들이 / 오늘은 왜 이리 귀여운가. // 식탁의 냉이국이 감미로운, / 가난해서 / 오히려 따사로운 / 인식의 내부. // 잔설 녹는 보리밭 / 건너편 / 과수원 둔덕에 햇살들이 모여 앉으면 / 아아 / 지천으로 피어날 복사꽃아 // 어머니가 꺼내 준 / 봄 잠바 입고 / 종달새 노래 찾아서 / 가랑비 내리는 / 들길을 종일 걸었다.”
입춘인 오늘, 이 땅의 노동자들이 희망을 이야기하고, 이 땅의 청소년들이 들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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