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세시풍속

예전에는 정월(正月)에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풍속이 많았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풍속의 뜻은 거의 같았다.

평양북도 강계 지역에서는 설날 첫닭이 울자마자 농부들이 부잣집의 퇴비를 몰래 훔쳐다가 자기 집 퇴비 위에 던지는 풍속이 있다. 부잣집 기운이 옮겨온다는 속설때문이었다. 정월 대보름 때 부잣잡 흙을 훔쳐다가 자기 집에 뿌리는 ‘복토 훔치기’ 풍습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생선 온마리 먹기’도 있다. 경기·경상·충남·강원 등에서 전승된 풍속으로 정월 대보름 날 아침에 반찬으로 주로 청어를 통째로 먹었다. 건강을 기원하는 한편 비린내가 적은 청어를 먹어 여름철 집안에 파리가 많이 꾀지 못하도록 하고, 머슴들을 푸짐하게 대접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복합적 뜻이 담겼다.

정월 대보름 때 무슨 일이든 아홉 번씩 해야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에서 전국적으로 행해진 ‘나무 아홉 짐 하고 밥 아홉 번 먹기’도 있다. 매월 1, 8, 13, 18, 23, 24일은 ‘인동토일(人動土日)’이라고 해서 흙을 다루면 지신(地神)의 노여움을 산다고 믿었는데 특히 정월 초하룻날을 조심했다. ‘동티’라는 말의 어원도 흙을 움직인다는 한자에 동토(動土)에서 나왔다.

정월 초이렛 날은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고 해서 ‘사람날(人日)’로 불렀고, 평남 용강에서는 열 나흗날을 ‘부인날’이라고 부르면서 여성들의 이웃집 방문을 환영하는 풍습이 있었다. 집안에서 살림만 하는 부녀자들에게 나들이를 하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처갓집 세배는 앵두꽃을 꺾어 갖고 간다’는 말은 설 관련 속담이다.

낭만적으로 생각되지만 실은 세배는 정초에 해야 하는데 처갓집 세배는 앵두꽃이 피는 봄에나 가는 것이라며 처갓집 챙기는 것을 은근히 타박할 때 썼다. 그러나 요즘은 세태가 변해 사위들이 처가부터 챙긴다. 며느리들도 친정행을 당당히 밝힌다.

젊은 부부들일수록 시댁(남편쪽)의 차례를 지내거나 세배를 올리자마자 친정(처가)에 갈 준비에 바쁘다. 시부모가 안계신 가정은 아예 설날 전에 처가로 가는 경우도 있다. 바야흐로 여성시대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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