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異說

김수영 시인이 한국 문학사에 남는 작품을 쓴 사람임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최고의 시인’이라는 극찬에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문학, 특히 詩에 최고, 최상은 없다. 공감이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수영을 광복 후 최고의 시인으로 꼽아온 평가들은 지나친 것이었다. 그는 참여시인의 전형으로 우상화됐다. 여기에 최면이 걸린 일부 연구자들이 그의 (일부)시들에 심오한 내용이나 있는 듯이 떠벌리는 것은 한편의 코미디같다”는 오세영 시인(서울대 국문과교수)의 말은 일리가 있다.

“김수영 시의 한 흐름을 이루는 쉬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시의 경우 자동기술법과 무의미한 진술들을 내세워 황당무계하게 독자들을 우롱한 면이 있다. ‘아메리카 타임지’나 ‘공자의 생활난’같은 시는 수준미달이고 일종의 시적 사기(詐欺)여서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혹평했다.

<꽃은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동무여, 이제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수량과 한도와 우매와 명석성을 그리고 죽을 것이다.> ‘공자의 생활난’전문이다.

오세영 시인의 비판은 계속된다. “김수영 시의 또 다른 흐름인 참여시의 경우 4·19혁명 이후 5·16군사정변 이전 표현의 제약이 거의 없던 시절에 쓰인 것이다. 시류를 탔던 것이며, ‘혁명을 잘 해보자’는 ‘어용시’를 썼다고 볼 수도 있다. 시의 고발 내용조차 관념적 추상적이다. ‘자유’ ‘혁명’이란 시어를 자주 썼지만 포즈(pose·겉모양)로서 쓴 것 같다. 그는 심지어 5·16군사정변도 ‘혁명’이라고 썼다.”

오세영 시인의 신랄한 바판에 계간문학지 ‘창작과 비평’을 만든 백락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수영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고만 말했다. 김수영 시인은 1998년 문학평론가 50인의 광복 후 대표시인 중 ‘1위’로 뽑았었는데, 그가 만일 살아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 지 궁금하다. 사후에 수제자로부터 악평을 받은 서정주처럼 여하간 죽은 사람은 억울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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