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잡영’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은 57세 때 지금의 도산서원(陶山書院) 자리에 서당을 짓기 시작해 61세에 완성한 뒤 제자들을 양성했다. 퇴계는 57세 때부터 66세까지 10여년 간 지은 시(詩)들 가운데 서당 안팎의 모습을 읊은 40제(題) 92수(首)를 뽑아 자필로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정리했다.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퇴계가 술을 마시며 살아온 지난 날을 후회하는 인간적 면모가 ‘도산잡영’에 담겨 있다.

“넘실넘실 흘러가는 저 이치 어떠한가(호호양양리약하·浩浩洋羊理若何) / ‘이와 같구나’ 일찍이 성인께서 탄식하셨네(여사증발성자차·如斯曾發聖咨嗟) / 본래부터 도의 본체 이것으로 볼 수 있으니(행연도체인자견·幸然道體因自見) / 공부 중간에 끊어지는 일 많지 않게 하려므나(막사공부간단다·莫使工夫間斷多)”

‘관란헌(觀瀾軒)’이란 제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다. 28자의 짧은 한시지만 유학 경전의 가르침이 글마다 녹아 있다. ‘관란’이란 ‘여울목(瀾)을 보다(觀)’는 뜻이다. ‘맹자’에 “물을 구경하는 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여울목(瀾)을 보아야(觀)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흐르는 물을 보고 “이와 같구나” 탄식한 성인은 공자다. ‘논어’ 자한(子罕)편에서 공자는 흐르는 시내를 보며 말했다. ”흘러간다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나!”

퇴계는 ‘물러나는(退) 시내(溪)’로 은거해 시냇가에 집을 짓고 물을 바라보며 인생을 생각했다. “물이 끊어지지 않고 흐르듯 공부도 중간에 끊어지는 일이 많지 않게 해야 한다”

“좋은 밤 함께 즐겁네, 좋은 손님들 찾아오니 / 산봉우리 넘어 불러 탁주잔 기울여 마시네 / 관란헌에 셋이서 솔밭처럼 앉아 그윽한 마음 열고 / 다시 난초 배에 올라 달놀이 하다 돌아 왔네”

“재주 없고 덕망 없어 어리석어졌는데 / 세상일에 대응해감에 어찌 글자 없는 비석 필요하리 / 먼지 쌓인 책상 앞에서 늘그막에 지혜 구하고자 하나 / 눈에 뿌연 안개 끼어 서로 헛갈림이 괴롭네”

’물러나는 시내’로 물을 보며 시를 읊은 퇴계의 생애가 새삼 숭고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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