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쿼터

근래 국산영화 제목이 충동적이고 엽기적 경향으로 가고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 ‘살인의 추억’ ‘여고생 시집보내기’‘주먹이 운다’ 등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외국영화 역시 잔혹한 게 많다. 걸핏하면 권총이 난무한다. 심지어는 기관총질로 인명을 삼대밭 쓸듯이 쓰러뜨린다. 그래도 제목은 충동적이거나 엽기적이진 않다. 국산영화 제목의 자극화 현상은 관객 유인 술책이다. ‘봐라, 제목이 이런데도 안 볼 수 있느냐’는 식이다.

그같은 영화의 작품성 평가는 관객의 판단에 맡긴다. 문제는 반사회성이다. 흔히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방종은 다르다. 청소년층의 모방범죄 중에 영화를 보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청소년들이 적잖다.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이다.

스크린 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제도)가 크게 줄어들 것 같다. 현행 연간 146일에서 약 반으로 줄게 될 것으로 보인다. 스크린 쿼터는 국산영화 진흥을 위해 극장마다 의무상영 일수를 지키도록 규제해온 제도다. 그동안 정부는 미국 등에서 이의 축소나 철폐를 수차 요청해 왔으나 미루어 왔다. 또 영화인들은 그 때마다 피켓 시위를 벌이곤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미룰 명분이 희박하다. 모든 교역이 개방되는 마당에 국산영화 보호를 위해 외국영화 수입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에도 맞지 않다.

스크린 쿼터는 이제 영화인들의 철밥통 챙기기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수십년동안 이의 우산속 보호를 받아왔다. 국산영화의 관객 점유율이 50%를 넘어섰다. 유수한 외국영화제에서 해마다 많은 수상작들이 나올만큼 수준도 높아졌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같은 영화는 1천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미국 등지에서의 흥행 또한 크게 성공했다.

국산영화도 자력으로 일어서야 경쟁력이 강화된다. 3류 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스크린 쿼터를 둘 이유는 없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선 공정거래위원회의 스크린 쿼터 축소 검토 결과가 주목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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