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고구려·백제 때 학문이나 전문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벼슬’. 박사(博士)에 대한 국어대사전의 낱말 풀이다.

고구려의 ‘태학박사’ 백제의 ‘오경박사’가 이에 해당된다. 서기 286년 일본의 초빙을 받고 천자문과 논어 등을 가지고 건너가 오오진(應神) 천황의 황실 사부(師傅)되어 한문을 보급시킨 백제의 왕인(王仁)박사가 이러한 박사다. 왕인의 자손은 얼마동안 대대로 일본 황실에서 일하는 특전을 누렸다.

조선 왕조에선 성균관·홍문관·규장각·승문원에 박사를 두었다. 공통점은 고구려 백제나 조선에서나 박사는 다 학문을 가리키는 것이 소임이었다. ‘박사’라고 하면 학문의 권위자로 존경받기는 마찬가지였던 게 언제부터였는 지 흔해 빠진 게 ‘박사’가 됐다. 흔해빠진 ‘박사’를 그나마 못된 주제에 웬 시비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어떻든 어지간 해서는 존경받지 못한 것이 이즈음의 박사인 것 같다.

한 해에 수 천명씩 사태 나듯이 쏟아지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 양(量)도 문제이지만 질(質)이 더 문제다. 박사 실업자가 많은 게 박사가 많은 탓도 있겠지만 박사의 품질이 낮은 데 원인이 더 크다.

예컨대 ‘행정학 박사’라고 하면 행정학의 달인으로 알지만 그렇지가 않다. 자기가 연구한 조그마한 특정 분야만의 지식에 그칠 뿐 행정의 기초가 되는 ‘행정행위’나 ‘행정처분’ 등 하나 제대로 설명 못하는 ‘행정학 박사’가 많다. 박사의 전공을 세분해 박사 칭호를 붙이든지, 아니면 다른 대책을 세우든지 해야 한다. 여기에다가 돈 주고 박사 논문을 사는 사례까지 있어 말썽이 되곤 한다. 또 박사 논문 심사가 헤픈 것도 문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박사 남발을 막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대학 구조 조정과 함께 대학원 역시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한다. 석·박사 과정의 승인 요건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많이 뒤늦긴 했으나 지금부터라도 ‘박사’다운 ‘박사’가 나오도록 하는 것은 학문의 오염을 막는다고 보아 격려할만 하다.

지금 같아서는 박사 같은 고급 인력을 놀린다지만 박사 같지 않은 박사가 많아서 놀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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